'6·15 후속편' 부처간 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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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 성(姓)을 걸고 몰랐다. " (박재규 통일부 장관)

"알고 있었지만 사전에 밝히지 않았다." (양영식 통일부 차관).

20일 저녁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선 진기한 장면이 벌어졌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공항에 영접 나올 것은 우리측이 미리 알았는지를 놓고 같은 부처 장.차관이 같은 자리에서 정반대 목소리를 낸 것이다.

어리둥절한 의원들에게 朴장관은 "(김정일 위원장이)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미리 알지는 못했다.

梁차관이 잘못 안 것" 이라고 강조했고, 梁차관은 "(우리측)평양 상황실에서 지시한 대로(롯데호텔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했다" 고 되받았다.

같은 자리에서 朴장관이 얘기한 "법적으로 국군포로는 없다" 는 내용은 몇 시간 뒤 국방부에 의해 반론( '국군포로 문제는 법적으로 종결되지 않았다' )이 제기됐다.

6.15 남북공동선언의 후속조치를 마련하고 있는 정부 부처 곳곳에서 여러 가지 혼선이 드러나고 있다.

미묘하고 중요한 사안을 어떻게 다루고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정부 전체의 입장도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 정책 혼선〓국군포로의 법적 해석에 대한 통일부와 국방부간 의견 차이가 파장을 던지고 있다.

21일 국방부 내 일부 장교들은 사석에서 "국군포로를 이산가족으로 취급한다는 박재규 장관의 자세가 불만스럽다" 고 말했다.

조성태(趙成台)국방장관은 국군포로에 대한 통일부측의 해명을 요청했다고 국방부 관계자가 전했다.

"후속대책의 총괄기구로 남북 화해.협력추진위가 발족될 것" 이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에 대해 실무부처인 통일부가 "협의된 바 없다" 고 부인했다. 옥상옥(屋上屋)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통일부 장.차관의 의견 대립에 대해 국회 통외통위 의원들은 梁차관에게 당시 평양 상황실에서 보냈다는 문서를 상임위에 제출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통일부 수뇌진의 모습은 있을 수 없는 개탄스런 행태" 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이산가족을 경협(經協)과 연계해 탄력적으로 협의하겠다" 는 통일부 梁차관의 발표에 청와대는 이틀 뒤 "金대통령의 뜻이 아니다" (박준영 대변인)라고 부인했다.

◇ 미묘한 발언과 특급정보 언급〓청와대는 본지가 20일 단독보도한 김정일 위원장의 '노동당 규약 개정' 관련 기사를 '비보도' 요청 위반이라고 단정하고 본지기자의 청와대 출입을 무기한 정지시켰다.

박재규 장관은 21일 '노동당 규약 개정이나 주한미군에 대한 金위원장의 인식변화가 언론에 알려질 경우 북한체제가 불안해 질 수 있느냐' 는 기자들 질문에 "김정일 체제는 확고하다고 본다" 고 말했다.

여권 고위 인사들이 언급한 정상회담과 관련한 미묘한 사안들은 여러 가지다. 민주당 서영훈(徐英勳)대표는 지난 18일 "국가보안법을 미래지향적으로 바꿔야 한다. 우리가 먼저 개정해야 한다" 고 말했다가 서둘러 사견(私見)이라고 정정했다.

정부고위인사는 "북측은 태극기와 인공기를 평양공항에 게양하고 애국가와 북한 국가를 연주하려 했다가 취소했다" (17일 기독교 인사 면담)고 소개했다.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 장관은 "군대는 그냥 두면 주적(主敵)개념만 생긴다. 그렇게 만들지 않기 위해 군인들을 경의선(京義線)건설에 투입해야겠다" 고 한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내용을 전했다.

◇ 뒤늦은 함구령〓21일 민주당은 徐대표 명의로 '취득비밀의 엄수' 를 지시하는 함구령을 당직자들에게 내렸다.

같은 시간 청와대 수석회의에서도 '여권 전체가 입조심' 을 해야 한다는 다짐과 주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당직자는 "6.15공동선언의 후속조치들이 면밀히 추진돼야 하는 시점" 이라며 "그러나 평양정상회담에 대한 정부 일각의 판단.시각 차이로 인해 혼선을 빚고 있다" 고 지적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평양회담 정보를 놓고 보안을 유지할지, 적극적으로 홍보할지에 대한 정부 내부 입장이 제대로 정리가 안됐다" 며 "수행원 일부가 경쟁적으로 발설하는 태도가 걱정된다" 고 말했다.

김석현.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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