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폐업…70대 환자 첫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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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의료계의 집단폐업에 따른 진료공백이 우려했던 의료사고를 불렀다.

20일 오전 10시쯤 서울 중구 국립의료원 응급실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보인 鄭모(39.무직.서울 강북구 미아동)씨가 병원들의 진료 거부로 4시간30분 동안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鄭씨는 19일 오후 10시쯤 감기약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갑자기 몸이 뒤틀리는 증세를 보여 동네병원에서 간단한 응급처치를 받았다.

그러나 다음날 오전 5시30분쯤 호흡곤란 증세가 심해져 다시 동네병원을 찾았으나 "위독하니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라" 는 답변을 들었다.

7년여 동안 공황장애(갑자기 심장이 마구 뛰고 숨이 막히는 증세)를 앓아온 鄭씨는 곧바로 평소 치료를 받아오던 G.K병원에 전화로 연락을 취했으나 "폐업으로 환자를 받을 수 없다" 며 진료 거부를 당했다.

鄭씨는 수소문 끝에 오전 10시쯤에야 국립의료원에 도착했지만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여서 응급처치 후 수술을 받았다.

또 19일 복통에 시달리던 이환규(77.경북 영천시 고경면)씨가 몇 군데 병원을 전전하다 수술받기 직전 숨졌다.

李씨는 이날 오전 7시50분쯤 Y병원을 찾았으나 병원측은 전공의들의 사표 제출이 예정돼 있어 수술.치료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李씨를 D병원으로 보냈다.

D병원은 李씨의 증세를 대장골동맥 파열로 판단했으나 수술을 맡을 혈관 전문의와 시설이 없어 다시 영남대의료원으로 보냈다.

영남대의료원은 李씨가 도착하자 곧 수술준비에 들어갔으나 오후 7시쯤 수술실로 향하던 李씨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숨졌다.

영남대의료원은 "평상시보다 빨리 수술준비가 끝났고 전공의 대신 경험이 많은 전문의들이 수술을 맡기로 했지만 대동맥이 터지면서 심장마비가 일어났다" 며 "이런 환자의 80%는 수술 전이나 수술 중 숨진다" 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정상적으로 영남대의료원으로 옮겨지지 못해 수술이 지체되는 바람에 숨졌다" 고 주장했다.

또 경남 김해에서도 강도를 만나 흉기에 다리를 찔린 崔모(40.경남 김해시 내동)씨는 피를 흘리며 병원을 돌아다니다 15시간만에 겨우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崔씨가 퇴근길에 강도를 만난 것은 지난 19일 오후 11시쯤 집근처에서였다.

피를 흘리며 근처 김해의료원으로 갔지만 수술을 거부해 다른 병원을 돌아다니다 20일 오후 3시쯤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崔씨 가족들은 "빨리 수술했으면 피도 많이 안흘리고 수술을 받을 수 있었는데 체온이 떨어질 정도로 피를 흘렸다" 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광주에선 구급차로 옮겨지던 60대 응급환자가 병원 복도에서 대기하다 숨지자 가족들이 "병원측이 환자를 방치해 숨졌다" 며 사인 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20일 서울소방방재본부에 따르면 119 구급차가 출동, 응급환자를 이송한 사례는 모두 4백30여건에 이르지만 병원에서 진료 불가를 이유로 입원이나 응급처방을 거부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실제로 오전 3시쯤 교통사고를 당한 李모(26)씨가 119 차량으로 S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병원측이 "수술할 전문의가 없다" 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

박신홍 기자, 부산.대구〓김상진.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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