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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환영! 관타나모 수감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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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 일리노이주 톰슨시는 요즘 들떠 있다. 쿠바의 미 해군기지 관타나모에 수용 중이던 9·11 테러용의자 100여 명을 이곳으로 옮겨오기로 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결정 때문이다. 여기서 9년째 여관을 운영하고 있는 루앤 브루크너는 “대통령이 우리 마을에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 줬다”며 “이게 꿈이 아니길 바란다”고 기뻐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렇다고 톰슨시 주민 대다수가 이슬람교도이거나 테러용의자에게 관대한 건 아니다.

‘교도소 산업’은 시카고에서 240㎞ 떨어진 시골마을 톰슨을 먹여 살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1년 완공된 톰슨교정센터(TCC)는 미국에서도 최첨단 교도소로 꼽힌다. 애초 이 교도소 건설은 1990년대 중반 일리노이주가 구상했다. 96년 3만6000명이던 수감자가 2009년엔 8만9000명까지 불어날 거란 예상에 따라 미리 첨단 교도소를 지은 것이다. 1억2800만 달러(약 1500억원)짜리 교도소답게 운영비도 연간 5000만 달러에 달했다.

교도소가 문을 열자 톰슨시 경제도 활기를 띠었다. TCC에서만 3000개의 일자리가 생겼다. 교도소 직원을 위한 식당과 위락시설도 속속 들어섰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수감자는 갈수록 줄었고 운영비를 견디지 못한 주 정부는 2002년 TCC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1800개 감방을 갖춘 TCC가 개점휴업 상태가 되자 지역경제도 곤두박질했다. 현재 톰슨시 실업률은 11%로 미국 전체 평균 10%보다 높다.

쪼그라들던 톰슨시에 관타나모 수감자는 구세주가 됐다. 오바마는 일리노이주로부터 TCC를 사들인 뒤 관타나모 수감자와 중범죄자를 수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1000~1500명의 직원을 추가로 배치하고 시설 투자도 늘릴 계획이다. 사람이 모이면 돈이 돌고 경기는 살아난다. 벌써 톰슨시 숙박업소와 식당은 내년 손님을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극도로 침체한 지역경제 탓에 9·11 테러용의자조차 마다하지 않는 게 요즘 미국 경제의 단면이다.  뉴욕=

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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