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람 사람] 계룡산 자연사박물관 문 연 이기석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 계룡산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공룡 화석.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과학교육을 받을 기회가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곳이 어린이들의 살아있는 과학 학습장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21일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문을 연 '계룡산 자연사박물관'(www.krnamu.or.kr)의 이기석(83)관장은 "우리나라에는 민속박물관은 많지만 자연사박물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적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전 이안과병원과 대전보건대의 설립자이기도 한 이 관장은 수십년의 구상과 5년여의 공식 준비기간을 거쳐 지상 3층, 지하 1층에 총 20만7248점의 전시자료를 갖춘 이 박물관을 건립했다. 평생 모은 재산 461억원이 몽땅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아들이 사는 아파트를 담보로 잡히기도 했다. 그만큼 자연사박물관 건립은 그의 평생의 꿈이었다. 1977년 대전보건대에 박물관학과를 설립한 것도, 지질학을 전공한 며느리(조한희 부관장)를 미국과 일본에 유학 보내 12년 동안 박물관학을 공부시킨 것도 이를 위한 장기 포석이었다.

박물관을 샅샅이 구경시켜 주던 이 관장은 1층 중앙을 장식하고 있는 '계룡이'에게 특히 애착을 보였다. '계룡이'는 1억4000만년 전 지구상에 살았던 초식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류의 뼈다. 높이 16m, 길이 25m, 무게 80t인 이 공룡 화석은 박물관 측이 미국 캔자스대팀과 공동 발굴해 들여온 것이다.

"'계룡이'처럼 거의 완전한 형태로 발굴되는 공룡은 세계적으로 몇 개 안 된다고 합니다. 한국에 가지고 올 때 미국의 여러 박물관에서 발굴 비용의 4~5배를 주고 사겠다고 했는데 다 거절했어요. 과학자들은 이 공룡이 늪에 빠져 익사하는 바람에 보존이 잘 된 것으로 추측하더군요."

전시자료 가운데는 우랄산맥에서 발굴한 매머드 화석, 세계에서 네마리 밖에 없다는 동굴곰, 146kg짜리 초대형 운석, 전남 무안 앞바다에서 출토된 세계 최대의 고래 뼈, 지름이 2m가 넘는 규화목(硅化木), 조선 전기의 미라도 있었다.

박물관 건립 과정에서 자연 경관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환경단체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공사가 1년여 지연된 데 대해 그는 "자연보호를 위해 아무 것도 짓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느냐"면서 "덮어놓고 보존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가장 큰 고민은 박물관을 어떻게 유지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세금 혜택도 없고, 인근 대전시 등에 안내간판 하나 거는 것도 너무 힘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달 유지비만 약 1억원이 드니 입장료(어른 1만원, 어린이 5000원)만으로는 충당키 어렵다.

하지만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그 전에 뭔가 박물관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수익사업을 할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공주=원동희.김방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