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성병욱 칼럼] 인사청문, 허위공방 없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지명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오는 26, 27일 열린다. 우리나라의 첫 국회 인사청문회다.

인사청문제도는 미국.필리핀 등 대통령제 국가에만 있는 제도다.

3부(府)간 '견제와 균형' 이 요체인 대통령제에선 대통령의 권한행사와 독주위험을 입법부가 견제.감사하는 게 중요하다.

반면 영국.프랑스.일본 등 의원내각제 국가에선 의회가 정부구성권을 갖고 있는 만큼 고위공직자 임명과정에 인사청문회 같은 까다로운 절차를 요구하지 않는다.

공직자 임명에 대한 인사청문제도는 미국에서 기원했다. 1787년 헌법제정회의는 연방 공직자의 임명권을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가져야 한다, 상원에 주어야 한다로 대립했다.

그 타협의 산물이 미 헌법 제2조2항이다.

헌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대통령은 모든 합중국의 관리를 지명해 상원의 조언과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는 것이다.

연방공무원의 임명권을 대통령과 상원이 공유하는 셈이다. 상원의 인준대상인 공직자는 무려 1만6천명에 이르며 이중 장.차관, 대사, 대법관 등 6백여명이 인사청문 대상이다.

인사제도 자체가 미국과 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감사원장.대법관 외에는 국회의 동의없이 정부공무원을 임명하게 돼 있다.

따라서 이번에 새로 도입된 국회의 인사청문회도 이들 국회동의가 필요한 공직자와 국회 선출 케이스 헌재재판관 및 중앙선관위원 등 국회 선출직에 한정된다.

미국에 비하면 무늬만의 인사청문회지만 각료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직자에 대한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전속돼 있는 현재의 우리 법체제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미국의 경험으로 보면 인사청문제도는 순기능이 크다. 우선 대통령이 공직자를 지명하기 전에 철저한 사전검증을 하도록 한다.

미 연방수사국(FBI)에서 지명후보자의 학력.경력.병역관계.납세.재산.가정생활 등에 관해 철저한 신원조사를 한다. 거기서 적합판정을 받으면 의회지도자, 주요 정치단체.이익단체 대표와의 협의를 거친다. 협의과정에서 심각한 반대에 부닥치면 후보 지명을 포기한다.

상원의 소관 상임위도 사전에 당사자에게 서면질의를 통해 답변서를 요구하고 실무팀은 후보자의 재산형성.운영과정의 불법여부 등을 조사한다.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공개 청문회가 개최된다.

대개의 청문회는 형식적으로 진행되지만 자질이나 도덕성, 정치적 성향에 대한 시비가 벌어지면 몇달씩 진행되는 수도 있다.

이렇게 검증절차가 철저하기 때문에 공직부적합자는 아예 지명과정에서 포기하거나 청문회과정에서 정부의 지명철회, 본인의 철회요청 등으로 거의 걸러진다.

때문에 막상 상원에서 인준이 거부된 경우는 미 헌법제정 후 2백년간 행정부 공직자는 12회, 대법관 지명자의 경우 28회에 불과하다.

새로 도입된 우리나라의 인사청문회 제도는 그 대상이 중요 공직자로 극히 제한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총리와 감사원장이 얼마나 중요한 공직자인가.

더구나 우리의 대법관과 헌재재판관의 역할을 겸한 미국 대법관에 대한 상원의 인사청문은 행정부 공직자에 비해 훨씬 철저하다. 인준이 거부되는 경우가 5명 중 1명이다. 최종심(審)이 미치는 영향이 심대하기 때문이다.

인사청문은 중요 공직에 적합한 인물을 고르고 부적합한 인물을 배제하는 절차이므로 정파간 정치적 투쟁의 대상이 돼선 안된다.

의원들은 허위.미확인 사실이 아닌 사실만을 기초로 질문하고, 답변자도 허위진술을 해선 안된다.

허위진술에 대해선 정치적.법적 책임을 물어 모처럼 도입된 인사청문제도가 바르게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

인사청문 자체가 국회가 국민을 대표해서 하는 것이므로 국민의 올바른 판단과 여론형성을 위해 청문절차는 완전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에 비공개 예외규정이 있다지만 비공개청문은 최소화하는 게 옳다.

인사청문 기간도 준비기간 열흘, 청문회 이틀로 법규정을 뒀지만 이 제도의 발전을 위해선 장기적으로는 날짜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헌법과 법률에 국회의 임명동의를 요하는 공직대상을 늘려 인사청문 대상을 넓혀 나가는 것이 매우 긴요하다.

어렵사리 도입된 인사청문제도가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유효한 제도로 정착, 활성화하도록 국민과 여야가 모두 지혜를 모을 때다.

성병욱 <본사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