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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6·15 선언, 그 사방미인의 은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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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북측은 6.15 공동선언을 김정일 위원장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는다고 한다. 김일성 시대의 7.4 공동성명과 고려연방공화국 제안을 계승하면서 김정일 시대 특유의 새로운 성과를 이룩했다는 것이다.

북측이 그렇게 나올수록 반북적인 일부 남쪽 인사들에게는 6.15 선언이 북쪽에 말려든 문건이라는 느낌이 강해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그 2항에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했으니 그야말로 고려연방제 통일안을 수용한 증거로 단정할 법도 하다.

북측 입장에선 많이 양보한 셈

그러나 이런 북측의 해석에 우리가 동조할 필요는 없다.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동조죄에 걸릴까 조심하자는 게 아니라, 공동선언이 실제로 어떤 문건인지 바로 알자는 것이다.

북측은 통일지상주의를 일종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는 체제다. 자나깨나 통일을 되뇌는 것이 민중의 통일염원에 부응하는 면도 있지만, 당장에 통일이 안 되는 책임을 미국과 남쪽 당국에 떠넘김으로써 정권을 유지하는 기능도 하는 것이다. 이런 체제의 지도자가 남측의 남북연합 구상이 자신의 통일방안과 상통함을 인정한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양보가 아니었다. 실제로 6.15 선언을 곰곰이 따져 읽으면 이런 양보가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모호성은 법률이라면 악법의 징표지만, 남북관계처럼 극한적인 대립 상황에서는 서로가 편의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두는 일이 합의 도출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실은 국제관계나 국내정치에서도 그런 절충의 기술이 소망스러울 때가 많다.

2000년 6월에 이런 절충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그 후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먼저 안보 면에서 한국의 사정이 몹시 어려웠을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이 자랑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마음놓고 치를 수 있었던 것도 6.15 선언이 있었던 덕이다.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고 9.11 테러가 발생했는데도 미국이 북한을 무력으로 때리기 힘들었던 것도 이미 6.15 선언이 나온 뒤였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전쟁이 터진다면 생명안보가 안 되기로는 남쪽 국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경제로 눈을 돌리면 6.15의 은덕이 더욱 실감난다. 남북 간의 돌발사건이 있을 때마다 국민이 라면과 생수 사재기에 나서고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외국의 투자자들이 대거 철수했더라면 한국 경제는 어찌 되었을 것인가.

그런데도 안보와 경제를 누구보다 중시하는 기득권 보유자들 중 상당수가 6.15를 못마땅히 여기고, 심지어 그 파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까지 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쉽게 말해 그것은 국가안보나 국민경제의 안정이 모든 기득권자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동선언이 여러 세력이 각기 편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절묘한 문건이긴 해도 한반도의 긴장과 이에 따른 국내의 억압체제가 달콤했던 사람들, 적어도 그 단맛에 미련을 못 버리는 사람들까지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점에서 6.15는 온전한 팔방미인은 아니고 사방미인쯤 되는 셈이다.

북한 내부 볼멘소리 있을 수도

그런데 분단체제에서 득을 보는 세력이 남북 양쪽에 다 있다고 한다면, 북녘에도 6.15 이후의 사태진전을 못마땅해 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으리라 짐작된다. 어쩌면 북의 지도층 내부에서도 이런 소리가 나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남쪽의 점진적 통일 노선에 끌려다녀서 도대체 얻은 게 무엇이냐. 미국은 여전히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고 경제를 옥죄는데 남쪽만 안보와 경제에 한숨 돌리게 해줘 북남 간 국력의 격차만 더 벌려놓지 않았느냐. 금강산도 내주고 개성공단도 내주고 이렇게 계속 퍼주기만 할 거냐…'.

물론 이들의 주장에도 우리는 동조할 수 없다. 동서냉전이 끝나고 전세계가 변화의 물결에 휩쓸린 오늘의 세계에서 분단체제의 현상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역사의 흐름을 못 읽은 진단이기 때문이다. 다만 6.15 선언이 남쪽에 많은 혜택을 주었다는 지적만은 정확한 것이라고 동조해 줘도 무방하리라 본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창작과비평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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