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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총구 권력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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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신념은 게릴라전으로 중국을 건설한 마오쩌둥다운 정치관이다. 공산주의의 총구는 당과 군이다. 당은 이념을 세균처럼 퍼뜨리고 군은 폭력으로 반대자를 제거한다. 이념은 선동으로, 선동은 적개심으로 발전한다. 적개심과 폭력은 한번 작동되면 대상이 제거될 때까지 확대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총구의 권력은 제거와 단절의 권력이다.

혁명 1세대인 마오쩌둥이 절대권력을 행사한 것은 문화혁명(1966~76년) 때였다. 이념과 선동과 적개심의 시대였다. 이 기간 중 타살되거나 자살을 강요받거나 옥사한 사람은 못잡아도 수십만명이다.

문화혁명의 피해자이자 2세대 지도자인 덩샤오핑 역시 총구로 집권했다. 마오쩌둥 이념의 충실한 계승자를 자처한 4인방과 생사를 건 권력투쟁(76년)에서 승리했다. 덩은 당시 동지들을 이렇게 선동했다.

"학살당할 운명에 몸을 맡겨 당과 국가를 파멸시킬 것인가, 놈들과 투쟁을 계속할 것인가. 4인방의 목숨을 끊는 전투를 감행하자."

3세대 지도자인 장쩌민이 덩샤오핑에게 권력을 넘겨받는 과정(87~89년)에 유혈 숙청은 없었다. 그러나 이때는 자유를 요구하는 학생.지식인 세력이 공산당 집단권력에 도전한 시기였다. 그 끝은 89년 6월, 덩샤오핑의 결정으로 벌어진 천안문 광장의 집단 학살이었다. 인민에게 총구를 겨눈 것은 인민해방군이었다. 마오쩌둥의 어법을 빌린다면 권력 내부의 양적 모순이 권력 바깥의 질적 모순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런 권력 이동의 역사에서 장쩌민 권력이 4세대 후진타오에게 매끄럽게 이양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권력 내부의 생사를 건 암투도, 권력 바깥의 시민 저항도 없었다. 중국 정치는 권력이 총구에서 나온다는 단절의 정치관을 15년 만에 극복했다. 물려주는 자와 물려받는 자에 연속성이 생겼다. 공산당 권력과 그 바깥 인민 사이의 갈등은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완화됐다.

중국 정치의 성숙은 단절의 권력사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얻은 교훈 때문일 것이다. 문화혁명은 악몽이었고, 천안문 학살은 누군가 책임져야 할 현재진행형 사건이라는 교훈이다. 과거의 위험과 현재의 위협을 공유한 그들은 싸움보다 타협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