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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재향군인회의 현실적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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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6월 18일 오후 2시30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 전국에서 모인 1만여명의 재향군인회(향군)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남북 평화통일 기원 범시민대회' 가 열리고 있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향군회는 개회사 및 결의문을 통해 "통일의 실현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갔다는 점에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행사가 끝날 무렵에는 참석자 전원이 "남북이 힘을 합쳐 평화통일을 이루자" 고 다짐한 뒤 손에 손을 맞잡고 '우리의 소원' 을 합창했다.

이상훈(李相薰.전 국방장관)향군회장도 개회사에서 "민족의 번영과 평화통일의 선봉에 서자" 고 다짐했고 최한민(崔漢珉)서울향군회장은 "동족상잔의 통한과 분단의 아픔을 평화통일의 열기로 승화하자" 고 강조했다.

1시간 남짓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종전의 '북괴' 라는 호칭 대신 '북한' 으로, '김정일' 대신 '김정일 위원장' 이라고 불렀다.

그동안 흔히 볼 수 있었던 적개심의 표현이나 북한을 자극하는 어떤 용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재향군인회는 예비역들이 중심이 된 대표적인 국내 보수 우익단체로 6.25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상당수 남아 있다.

지난해 6.25 행사는 서해 연평해전 직후여서 '북한의 서해 무력도발에 대한 규탄' 과 '타도 북한' 이 주제였다.

그러나 이날 행사는 '6.25전쟁 50주년 기념식' 보다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화해와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성격으로 완전히 바뀐 것이었다. 6.25전쟁 등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북한을 강력히 규탄하던 예년과는 현격하게 달라진 분위기였다.

당초 이날 행사는 '6.25 자유수호 전쟁 50주년 기념행사' 라는 이름 아래 이달 초부터 매일 대북 규탄집회를 가질 계획이었으나 남북 정상회담을 적극 기념하기 위해 행사성격을 과감히 바꾸고 집회신고도 미뤘다는 후문이다.

향군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서해 교전사태로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높았지만 역사적 정상회담으로 달라진 국민적 정서를 감안, 행사성격을 변경했다" 고 설명했다.

1960년대 이후 오직 반공만을 외쳐온 재향군인회의 이같은 변신이 급변하는 남북관계에 모처럼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해 봤다.

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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