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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홍콩의 慕情

중앙일보

입력

신종 인플루엔자가 조금씩 수그러 들자 해외 여행객이 늘고 있다고 한다. 겨울에는 비교적 따뜻한 홍콩을 많이 찾는다. 홍콩을 방문하는 60대 이상의 사람들은 아직도 1950년대 중반에 20세기 폭스사에서 만든 월리암 홀덴과 제니퍼 존스가 공연한 모정이라는 영화를 기억한다. 그들이 사랑을 나눈 빅토리아 피크며 리펄스 베이를 찾아가 보고 애버딘에서 그들의 그림자를 찾고 있다. 물론 그 영화 주제가로 세계적으로 유행한 “사랑은 아름다워라”(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라는 앤디 윌리암스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50년 전 옛 홍콩으로 회상하고 홍콩을 방문한다.
홍콩의 혼혈 중국계 여의사와 영국의 통신사 특파원간의 이루어지지 못한 슬픈 사랑의 이야기는 당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한국사람으로서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남자 주인공이 한국전쟁에 종군하여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慕情의 작가 한수인은 자신의 책이 베스트셀러로 됨에 따라 본업인 의사를 그만두고 전문 작가가 되었다. 1917년생인 그녀는 지금은 92세의 나이로 스위스 로잔느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최근 그녀에 대한 자전적 소설이 발간되었는데 한수인의 인생 또한 소설 못지않은 드라마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수인의 아버지는 淸朝말기 사천성의 富商가정 출신이었다. 그는1912년 벨기에로 기관차도입을 위해 중국유학생 1호로 파견될 정도로 탁월한 인재였다고 한다. 그가 다른 유학생들처럼 열심히 공부만하고 돌아왔다면 중국의 철도역사에 남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운명의 여신은 그와 현지의 벨기에 여성이 사랑하도록 만든 것이다. 당시 중국남자와 서양여자와의 사랑은 양가 어느 쪽에서 찬성할 수 없었다. 두 남녀는 사랑의 도피를 결심했다. 학업을 중단한 중국남자는 사랑하는 벨기에여성을 데리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고향 사천성을 피해 북경에 가까운 河南省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물설고 땅설은 이국땅에서 명문가정 출신의 벨기에여성은 사랑 하나만으로 어려운 시련을 이겨냈다. 그들은 놀랍게도 8명의 자녀를 낳아 키웠다고 한다. 한수인은 그중 하나였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한수인은 20세 되던 해 어머니의 고향 브라셀 의과대학의 장학금을 받아 벨기에로 건너갔다. 그러나 1937.7.7 중일전쟁이 발발되자 한수인은 조국이 그녀를 원하고 있다고 판단 의학수업을 중단하고 조국에서 전쟁피난민을 위한 의료봉사를 결심하였다. 그후 그녀는 귀국도중 알게 된 국민당출신 군인과 결혼하였으나 곧 별거하고 1941년 의학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다시 중국을 떠난다.
의사가 된 한수인은 1940년대 말 홍콩으로 돌아와서 종합병원에 근무한다. 혼혈 미인 한수인을 어느 파티에서 만나 사랑에 푹 빠진 영국특파원. 두 젊은 남녀의 사랑은 동서가 만나는 로만틱한 홍콩을 배경으로 무르 익는다. 1950년 여름 한국전쟁의 발발로 영국 특파원은 전쟁이 한참인 한국으로 특파 종군한다. 그러나 어느날 한수인에게는 뜻밖의 비보가 날라든다. 사랑하는 사람의 전사 통지서였다. 한수인은 갑작스러운 슬픔을 이기기 위하여 타자기 앞에서 밤새도록 두 사람의 짧지만 깊었던 사랑의 글을 쳐냈다. 그것이 1951년 발간된 “모정”이라는 소설이다. 이 자전적 소설이 세계적으로 대 히트를 하고 이어 헨리 킹 감독이 同名의 영화를 만든다. 이 영화 역시 음악 의상 등 아카데미상을 3개나 받는 대박을 터뜨렸다. 모정을 통해 홍콩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해졌고 반면에 불행하게도 한국전쟁은 사랑하는 사람을 갈라놓은 비극의 전쟁으로 다시 한번 자리메김을 하게되었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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