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남북시대] 장기수 송환 어떻게 이루어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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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비전향 장기수 문제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타결의 실마리를 얻게 됐다.

남북한은 1993년 3월 이인모(李仁模)씨를 통해 비전향 장기수 송환의 전례를 만든 경험이 있다.

인민군이었던 李씨는 한국전쟁때 덕유산 등지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52년 체포돼 34년간 복역했다가 출소한 뒤에도 끝내 전향을 거부했었다.

당시 정부는 북한의 요청을 받아들여 남북간 연락관 접촉을 통해 송환 시기와 방법을 사전 조율한 후 李씨를 판문점 평화의 집을 거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북측에 인계했다.

李씨는 북송 형식은 '방북' 이었다.

李씨는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방북 3일전 ▶방문 대상은 평양의 부인과 딸 등 가족▶방문 목적은 고향방문과 가족상봉으로 기재한 북한방문 증명서 발급신청서를 통일원에 신청, 증명서를 받았다.

법무부와 통일부에서는 비전향 장기수 송환방침이 확정될 경우 李씨의 전례에 따라 송환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들은 이산가족의 상봉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가 함께 논의됐다는 점에서 93년 일방적인 李씨 송환이라는 '외교적 실수' 를 반복하지 않았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에는 암초가 남아 있다.

국방부는 98년 국회에 비전향 장기수를 국군포로와 맞교환하는 방식을 건의했지만 북한은 휴전 이후 국군포로는 물론 납북자는 전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오고 있다.

국정원도 지난해 2월 55년 이후 북한에 월.납북된 4백41명 중 22명이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사실이 확인됐다는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남파간첩 송환 문제도 남북간에는 미묘하다.

법무부 기준으로 보면 인민군이든 남파간첩이든 출소후에도 전향을 거부했다면 비전향 장기수다.

그러나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행을 원하는 남파간첩에 대해 정작 북측이 모르는 이들이라고 하면 서로간에 이상한 상황이 연출된다" 고 말했다.

북한이 송환된 李씨를 통해 수십년간의 옥살이와 고문 등으로 건강이 나빠졌다며 남한 비방에

나섰던 전례도 정부 실무자들이 고민하는 대목이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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