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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들 "고향길 열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꿈에 그리던 가족과 만날 수 있다는 거디요. "

남북 정상회담 이틀째인 14일 오후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원칙적으로 합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실향민과 귀순자들은 설레는 가슴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대부분 이산가족 상봉 합의 사실을 반복해서 보도하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 마을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당장 혈육 상봉의 길이 트인 것처럼 감격 속에 얘기꽃을 피웠다.

언론사에는 "언제 어디서 가족을 만날 수 있느냐" 는 성급한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1998년 8월 귀순한 김순영(金順英.24)씨는 "헤어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될 것 같아 가슴 벅차다" 며 "마음은 벌써 고향 마을을 향해 달리고 있다" 고 밝혔다.

97년 9월 귀순한 장인숙(張仁淑.59)씨도 "북에 두고 온 아들(32)이 가장 보고 싶다. 북한 땅을 밟게 되면 남한 생활을 들려 주고 싶다" 고 말했다.

간첩 혐의로 27년간 복역하다 87년 석방돼 갱생보호공단대구지부 생활관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김원철(金元哲.83)옹은 "59년 5월 남파되면서 고향인 평북 철산에 두고 온 노모.아내.아들을 만날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 며 눈물을 글썽였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 진촌리 장형수(58)이장은 "고향인 황해도 장연군의 친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며 "통일이 되면 부모님 묘소를 북한 고향땅으로 옮기겠다" 고 말했다.

1.4후퇴 당시 고향인 사리원에 부모님과 동생 등을 두고 단신으로 피란한 이시영(李時榮.75.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씨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며 "이산가족 자유 왕래까지 포함하는 폭 넓고 실질적인 상봉이 이뤄져야 한다" 고 주문했다.

아바이 마을 박임학(朴林學.71)노인회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항에 직접 나와 金대통령을 영접하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이산가족 상봉이 반드시 이뤄질 것으로 예감했다" 면서 울먹였다.

9세 때 부모님과 함께 월남한 함경남도 도민회 속초지구 조병희(趙炳希.59.속초시 동명동)사무국장은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을 밟게 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정영진.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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