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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 간염서 신종 플루까지, 그의 고집이 '백신 자주권' 지켰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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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호 20면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 ‘헤파박스B’ ‘한타박스’ 등을 독자 개발한 그는 한국의 백신 주권을 지킨 기업인으로 꼽힌다. 중앙포토

전남 화순에 있는 녹십자 백신 공장은 ‘대(對)신종 플루 전쟁’의 전초기지로 불린다. 정부가 설정한 신종 플루 백신 접종 대상은 1300만여 명. 영국계 다국적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으로부터 공급받기로 한 150만 명분(300만 도스) 정도를 빼면 모두 이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이다. 녹십자는 내년 초까지 신종 플루 백신 ‘그린플루-S’ 3000만여 도스를 생산해 국내 백신 수요 대부분을 충족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생산에 들어간 백신 공장에 국민 건강이 달려 있다”는 이 회사 관계자의 얘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녹십자 화순 공장이 없었다면 신종 플루 백신을 구하기 위해 한국은 외국계 제약사에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국내 백신 선구자,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

한국이 ‘백신 자주권’을 지킬 수 있었던 데는 지난달 작고한 허영섭(1941~2009) 녹십자 회장의 공로가 컸다. 백신 공장 설립을 둘러싼 에피소드에서부터 그의 기업관을 엿볼 수 있다. 화순 공장엔 정부 지원금 162억원을 포함해 모두 800억원대 자금이 투입됐다. 당시 정부는 백신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녹십자에 외국계 제약사와 합작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고 허 회장은 “외국계 자본이 들어오면 경영권이 넘어갈 수 있다”며 이런 제안을 거부했다. 그만큼 백신 주권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다. 녹십자는 화순 공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 백신, 탄저 백신, 결핵 예방 백신, 파상풍 백신 등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허 회장은 경기도 개풍 출신으로 ‘송상(松商) 기업인’으로 유명했던 고(故)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자의 차남이다. 서울대 공대를 나와 독일 아헨대 유학을 마치고 녹십자(당시 극동제약) 부장으로 입사한 것이 70년이다. 이후 허 회장은 ‘만들기는 힘들지만 꼭 필요한 필수의약품’ 개발에 뛰어들었고 그 중심에 백신이 있었다.

허 회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83년 미국 MSD, 프랑스 파스퇴르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B형 간염 백신 ‘헤파박스B’ 개발에 성공하면서부터다. 헤파박스B는 80년대까지 해도 13%에 이르던 한국인의 B형 간염 보균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 헤파박스B 개발 사례를 TV를 통해 지켜본 전두환 대통령이 “이런 기업에는 훈장을 줘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한다(허 회장은 84년 3월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헤파박스B는 전 세계 60여 개 국가에 4억 도스(1억3000만 명분) 넘게 보급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접종된 B형 간염 백신으로 기록됐다.

녹십자는 이후에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유행성출혈열 백신(88년), 세계 두 번째 수두 백신(93년) 등을 통해 한국의 바이오 제약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허 회장은 아낄 때 아끼고 쓸 때 쓰는 씀씀이로도 유명했다. 개성상인의 후예답게 녹십자는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췄다. 허 회장은 형광등을 켜지 않고 독서를 하는 등 사내에서 ‘짠돌이’로 유명했다. 그러나 수익을 나누고 재투자하는 데는 누구보다 과감했다.

B형 간염 백신 개발로 막대한 수익금을 거두자 허 회장은 “먼지가 쌓여도 이 땅에 쌓인다”며 과학기술부 공인 1호 연구 재단인 목암생명공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설립 25주년을 맞은 이 연구소는 신물질 탐색 등 기초기술을 중심으로 중장기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허 회장은 또 자신이 보유 중이던 회사 주식 54만3000주를 전 직원에게 무상배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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