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에 있는 녹십자 백신 공장은 ‘대(對)신종 플루 전쟁’의 전초기지로 불린다. 정부가 설정한 신종 플루 백신 접종 대상은 1300만여 명. 영국계 다국적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으로부터 공급받기로 한 150만 명분(300만 도스) 정도를 빼면 모두 이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이다. 녹십자는 내년 초까지 신종 플루 백신 ‘그린플루-S’ 3000만여 도스를 생산해 국내 백신 수요 대부분을 충족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생산에 들어간 백신 공장에 국민 건강이 달려 있다”는 이 회사 관계자의 얘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녹십자 화순 공장이 없었다면 신종 플루 백신을 구하기 위해 한국은 외국계 제약사에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국내 백신 선구자,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
한국이 ‘백신 자주권’을 지킬 수 있었던 데는 지난달 작고한 허영섭(1941~2009) 녹십자 회장의 공로가 컸다. 백신 공장 설립을 둘러싼 에피소드에서부터 그의 기업관을 엿볼 수 있다. 화순 공장엔 정부 지원금 162억원을 포함해 모두 800억원대 자금이 투입됐다. 당시 정부는 백신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녹십자에 외국계 제약사와 합작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고 허 회장은 “외국계 자본이 들어오면 경영권이 넘어갈 수 있다”며 이런 제안을 거부했다. 그만큼 백신 주권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다. 녹십자는 화순 공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 백신, 탄저 백신, 결핵 예방 백신, 파상풍 백신 등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허 회장은 경기도 개풍 출신으로 ‘송상(松商) 기업인’으로 유명했던 고(故)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자의 차남이다. 서울대 공대를 나와 독일 아헨대 유학을 마치고 녹십자(당시 극동제약) 부장으로 입사한 것이 70년이다. 이후 허 회장은 ‘만들기는 힘들지만 꼭 필요한 필수의약품’ 개발에 뛰어들었고 그 중심에 백신이 있었다.
허 회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83년 미국 MSD, 프랑스 파스퇴르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B형 간염 백신 ‘헤파박스B’ 개발에 성공하면서부터다. 헤파박스B는 80년대까지 해도 13%에 이르던 한국인의 B형 간염 보균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 헤파박스B 개발 사례를 TV를 통해 지켜본 전두환 대통령이 “이런 기업에는 훈장을 줘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한다(허 회장은 84년 3월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헤파박스B는 전 세계 60여 개 국가에 4억 도스(1억3000만 명분) 넘게 보급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접종된 B형 간염 백신으로 기록됐다.
녹십자는 이후에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유행성출혈열 백신(88년), 세계 두 번째 수두 백신(93년) 등을 통해 한국의 바이오 제약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허 회장은 아낄 때 아끼고 쓸 때 쓰는 씀씀이로도 유명했다. 개성상인의 후예답게 녹십자는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췄다. 허 회장은 형광등을 켜지 않고 독서를 하는 등 사내에서 ‘짠돌이’로 유명했다. 그러나 수익을 나누고 재투자하는 데는 누구보다 과감했다.
B형 간염 백신 개발로 막대한 수익금을 거두자 허 회장은 “먼지가 쌓여도 이 땅에 쌓인다”며 과학기술부 공인 1호 연구 재단인 목암생명공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설립 25주년을 맞은 이 연구소는 신물질 탐색 등 기초기술을 중심으로 중장기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허 회장은 또 자신이 보유 중이던 회사 주식 54만3000주를 전 직원에게 무상배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