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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풍류탑골 (46)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46. 클래식 박사 송영

희극적인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은 그것에 전혀 빠지지 않는 사람이 희극 배우 가운데 최고가 아닐까. 같은 이야기인데도 어떤 사람이 말하면 재미가 하나도 없고 어떤 사람이 말을 하면 웃음을 참을 수 없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소설가 송영 선생은 탁월한 희극 배우다. 송선생처럼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가지고 많은 사람을 찬찬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웃기는 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송선생은 대개 시인 이영진.강형철.이승철.이재무.박선욱 등과 어울려 왔다.

송선생이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에는 작가들을 위한 기금마련 술집을 하고 그 뒤풀이를 탑골에서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송영선생이 있는 자리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는가 들어보려 해도 잘 들리지 않을뿐더러 들어봤자 별 얘기도 아니었다.

본인의 자랑을 슬쩍 곁들이되 그것을 매우 객관적인 것처럼 말하곤 했다.

"승철이 자네도 알다시피 콩트 이런 것은 내가 거의 천재 수준 아닌가.

사람들이 콩트집도 내던데, 우리 집에는 콩트가 널려 있어.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라니까. "

"에이 선생님도. 많긴 많습디다. 선생님 방에 가니까 각종 사보에 쓴 콩트가 방바닥에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널려 있었으니까 그 말도 맞긴 하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이 천재라고 하시기에는 조금…" 말이 잘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굳이 반박할 것도 없을 만큼 말의 빈틈을 물고 늘어지는 솜씨에 사람들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잔잔하면서도 조용한 분이 해병대 학사장교 탈영병 1호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7년을 도피생활을 했고 그 기간 동안 클래식 음악감상실에 출입하면서 전문가 수준이 됐다고 하니 참으로 묘한 일이다.

게다가 바둑의 수준이 김성동.김흥규 선생과 더불어 한동안 '문단 3강(强)' 을 이루어 서로 본인이 최강이라고 주장했다.

엇비슷한 실력의 문인들은 서로 '하수' 라고 부르기 좋아해 졌을 때는 운이요, 이겼을 때는 실력이라고들 했다. 바둑에 관해서는 송영 선생도 똑 같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송영 선생이 부르는 '부용산' 은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다.

작곡자가 알려지지 않은 이 노래를 문단에서 처음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김지하 시인이 원조라는 설, 황석영 선생이 원조라는 설 등이 오가지만 송영 선생도 자신이 원조라고 주장한다.

남북정상회담도 열렸고 하니 '부용산' 의 작곡자를 알아내는 게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이 노래를 처음 부른 문단의 원조도 언젠가 가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노래는 해방후부터 6.25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의 해방공간에서 빨치산 활동에 가담한 사람의 애달픈 심사를 노래한 것이라는 설도 있고, 목포의 한 음악 교사가 사랑하는 연인이 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하는 슬픔에서 만든 노래라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이 노래가 유장한 가락에 실려 불릴 때는 모든 사람이 숙연해졌다.

"부용산 오릿길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부용산 오릿길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송영 선생은 노래만 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나 감식력이 매우 빼어나 음악 전문지에 주요 연주에 대한 평을 연재했고, 이를 묶어 '무언의 로망스' 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 잔잔한 노래가 듣고 싶다.

한복희 <전'탑골'주점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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