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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김위원장 공항영접 숨은뜻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55년 남북 분단의 벽을 넘는 세기의 장면은 파격으로 시작됐다.

13일 평양 순안(順安)공항에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 직접 영접은 북한 의전(儀典)에서 전례없는 일이다.

金위원장은 1992년 김일성(金日成) 주석이 양상쿤(楊尙昆)중국주석을 맞을 때 정치국 상무위원 자격으로 함께 평양역에 나간 게 마지막 영접행사. 金위원장이 공항에 직접 나와 외빈을 맞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대중 대통령 환영행사는 놀라움과 충격을 줄 만했다. 그런 속에서 金위원장은 베일 속의 부정적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과시하고 있었다.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행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국대 강성윤(姜聲允.북한학과)교수는 "金위원장은 金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세계를 향해 '폐쇄적이고 위험하다' 는 부정적 인상을 일소하는 이미지 전환의 극적 계기로 삼은 것" 이라고 평가했다.

그것은 우선 '체제유지' 와 '개방' 에의 자신감을 강렬히 각인시키는 데 비중이 두어졌다.

발을 동동 구르며 '김정일' 을 환호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은 김일성 사후 '체제유지' 에 성공한 그의 권위를 압축했다.

백화원영빈관까지 6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열렬한 연도 환영인파도 金위원장의 자신감을 드러낸 상징으로 북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개인적 권위' 와 함께 金위원장은 섬세함.다정함.치밀함.예의 등의 개인적 이미지를 덧칠하는 짜임새 있고 준비된 모습도 과시했다.

金위원장(58세)은 이례적으로 비행기 트랩 밑에 홀로 서 金대통령을 맞았다. 영접 내내 金대통령의 두세 걸음 뒤쪽을 유지했다.

코너를 돌 때는 잠시 서서 金대통령 내외에게 손짓으로 인도했다. 다리가 불편한 金대통령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보폭을 조절하는 배려도 했다. 북한의 화동(花童)들은 과거 김일성 주석에게도 꽃을 주었으나 이번엔 金대통령 내외에게만 꽃다발이 증정됐다.

파격은 이어졌다. 먼저 승용차 좌측 문을 열고 기다리다 金대통령이 상석에 앉은 뒤 동승하는 장면은 윗사람을 우대하는 동양적 인품을 갖춘 이미지 관리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공항에는 당초 金대통령의 평양 도착성명을 예정한 연설대도 마련됐다. 그러나 金위원장의 등장에 따라 DJ 도착성명 발표는 생략됐다. 金위원장이 답사를 해야 하는 등 예상치 못한 의전문제로 합의가 안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외교소식통은 "행사가 金위원장의 새로운 이미지 부각에 초점이 맞춰져 생략됐을 수도 있다" 고 지적했다.

姜교수는 "통 큰 정치를 의미하는 광폭(廣幅)정치와 인덕(仁德)정치를 표방해온 金위원장이 특유의 대담성으로 서방 외교무대에 본격 데뷔하겠다는 신호탄" 으로 평가했다.

金위원장의 파격은 개방과 개혁을 위해 북한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읽게 한다는 것.

통일연구원 정영태(鄭永泰)북한연구실장은 "전세계를 향해 북한이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추진하겠다는 '개방' 의 의지를 부각시킨 것" 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올 들어 이탈리아.호주와의 수교,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가입으로 전방위 외교에 나섰다.

대내적으로는 '경제재건' 을 목표로 기업경영의 효율화, 인터넷 등의 정보화 사업 도입, 인프라 구축 등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해 왔다.

鄭실장은 "극도의 신비함에 싸여 있던 金위원장이 친근한 이미지로 자신을 부각시킨 것은 정상회담에서도 무언가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이라고 말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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