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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BOOK] 엉뚱한 70가지 숙제, 몰랐던 나를 발견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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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나를 더 사랑하는 법
미란다 줄라이
해럴 플레쳐 엮음
김지은 옮김, 앨리스
212쪽, 1만8000원

2002년부터 2009년 5월까지 인터넷의 한 웹사이트(www.learningtolovemore.com)에는 사람들에게 내주는 숙제가 차례로 게시됐다. 70가지에 달하는 숙제 내용은 이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을 다시 읽어볼 것, 누군가 춤추는 모습을 촬영할 것, 응원 플래카드를 만들어볼 것, 최근에 한 말다툼 내용을 자세히 적어볼 것…. 영화감독이며 작가인 미란다 줄라이와 아티스트인 해럴 플레쳐 두 작가가 펼쳐온 행위예술인 웹 프로젝트였다. 엉뚱하기 짝이 없는 ‘지시사항’인데, 여기에 5000여명이나 되는 네티즌이 참여해 자신들의 일상을 꾸밈없이 공개했다. 책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다양한 결과물을 사진과 글로 보여준다.

‘과거의 자신에게 충고를 하라’는 숙제에 뉴욕에 사는 여성 린다는 54세의 자신에게 “좀더 밝은 색상의 옷을 입고. 먼저 생각하고 말하라”고 조언했다. 웬디라는 여성은 사춘기 시절의 자신에게 “너는 예쁘고, 사람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의 너를 좋아한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적었다. 침대 밑에 잠든 고양이, 부모님 집에 걸려 있는 싸구려 액자,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몸의 작은 흉터에 얽힌 이야기 등 책에는 숱한 사람들의 소소한 사연 뿐이다.

줄라이와 플레쳐, 두 사람은 서문 외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전했다. 인터넷을 매개로 한 예술의 범주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색다른 목소리로 들려준 셈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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