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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촌 속초 아바이마을 이동근옹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눈만 감으면 북에 두고 온 가족과 고향산하가 눈에 선해.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끝나 죽기 전에 이산가족 상봉이 꼭 이뤄졌으면 한(恨)이 없겠어. " 10평 남짓한 전셋집에서 홀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실향민 이동근(李東根.84)할아버지가 필담으로 쏟아낸 비원(悲願)이다.

그는 실향민 1세대들이 망향의 설움을 삼키며 옹기종기 모여 사는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속칭 아바이 마을에 산다.

50년간 마음에 담고 살아온 북한의 가족 생각에 요즘 뚠눈으로 지새우는 밤이 부쩍 늘었다. 그는 한 서린 세월의 상처 끝에 1987년에는 성대 제거 수술을 해 말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李옹은 함경남도 이원군에서 어부 생활을 하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던 50년 12월 단신 월남했다.

"45일만 지나면 국군이 다시 진주할 것이라는 말을 믿고 북한 체제가 싫어 가족을 두고 남으로 온 게 이렇게 돼버렸지. "

당시 고향에는 동갑내기 부인과 일곱살 난 딸, 네살배기 아들이 있었다. 월남한 후 주문진과 고성 등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李옹은 70년대 초반 아바이 마을에 정착했다.

외로움을 못이겨 새 살림을 꾸리기도 했으나 상처(喪妻)와 생이별을 거듭했다. 그러나 혼인 신고를 하거나 자식은 두지 않았다.

혹여 통일이 돼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을 재회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결국 하염없이 분단의 세월만 흘러가자 주위의 권유에 못이겨 80년대 후반 한 할머니를 호적에 올린 뒤 함께 살았으나 95년 사별했다.

요즘은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비좁은 방안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1시간30여분 동안의 인터뷰는 필담으로 진행됐다.

李옹은 필담에서 가족을 버리고 온데 대한 미안함과 인간적인 고뇌를 간간이 쏟아냈다.

"만나게 되면 과연 나를 알아볼까, 자식들이 나를 미워하지 않을까. 솔직히 재회할 자신이 없어. "

더듬더듬 글을 써내려가는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자신의 속내를 육필로 담아냈다.

"대통령님. 이산가족 상봉을 이뤄 실향의 한을 풀어 주세요. "

속초〓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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