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SOFA협상에 유의할 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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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주한 미군 지위에 관한 한.미 행정협정(SOFA)의 미국측 개정안이 한국측에 전달됐다.

지난달 31일 스티븐 보즈워스 주한 미대사가 이정빈(李廷彬)외교부장관에게 전달한 개정안은 주한 미군 피의자의 신병 인도 시기를 현재의 확정판결 후에서 기소 시점으로 앞당기는 내용이 골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지적돼온 이 부분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데 미국측이 전향적 입장을 보인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대신 미국은 교통사고나 단순폭행 등 경미한 범죄에 대한 재판권을 미국측에 넘기는 한편 피의자와의 자유 면회권 보장, 필요시 미측 인사 참관, 사식(私食)및 물품 제공 보장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부분은 피의자 인권보호와 한.미간의 상이한 사법환경을 감안, 합리적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미측은 개정안에서 형사관할권 문제만을 다루고 있지 환경이나 노동.검역.노무.기지사용권 등 다른 중요한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이라면 미국의 협상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달 중순부터 시작되는 협상에서 형사관할권 문제가 타결된다 하더라도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3년반 만에 재개되는 이번 협상도 결국 무위로 끝날 공산이 크다.

미군기지에서 방출되는 오.폐수로 인한 환경오염은 우리로선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또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국내법상 보장된 노동3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미군이 들여오는 농수산물에 대해서는 검역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우리는 기지사용권 문제가 시대적 상황에 맞게 합리적으로 조정돼야 한다고 본다.

미군은 '합중국은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따라 대한민국 안의 시설과 구역의 사용을 공여받는다' 는 SOFA 협정 제2조에 따라 필요한 시설과 기지를 우리 정부로부터 무상 제공받고 있다.

기지 사용의 기본원칙은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국내법으로 미군 기지의 지역 선정과 시설 기준을 양국 협의에 따라 조정할 수 있게끔 돼 있다.

우리의 경우 1945년 한반도에 들어온 미군은 일본군을 무장해제하면서 일본군의 시설과 기지를 그대로 접수했다.

또 한국전이라는 특수상황에서 미군이 임의 수용한 시설과 기지가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미군 기지에 시설물이 들어서더라도 우리가 개입할 어떤 법적 근거도 없다.

미군의 기지 사용 범위를 최소화하고 기지 내 형질변경에 대해서는 우리와 협의토록 하는 장치만큼은 적어도 마련돼야 한다.

한반도 주변의 21세기 전략이라는 큰 차원에서 미국은 이번 개정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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