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씨, 朴총재에게 보안법 결연대처 주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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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1일 옥인동 이회창 전 총재 자택을 방문, 악수를 나누고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1일 이회창 전 총재를 만나 국정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朴 대표는 이날 서울 종로구 옥인동의 李 전 총재 자택으로 찾아가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정부 참칭조항 삭제 등에 대한 자신의 발언은 결코 법 폐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李 전 총재는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반국가단체 개념에 북한을 포함시키지 않고 완화한다면 법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국보법 폐지에 강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다음은 이날 대화 내용이다.

▶박근혜 대표 (이하 박)=여기 오니까 옛날에 낯익은 분들이 많이 계시다. 방금 아시아 유럽 포럼에 참석해서 요즘 얘기가 많이 되는 국보법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고 왔다. 오랫동안 정치 중심에 계셨는데 나라 돌아가는 사정을 보니 걱정이 많으셨을 것 같다.

▶이회창 전 총재(이하 창)=얼마나 힘드시나. 그래도 당이 어려울 때 지난 총선에서 당을 일으켜 세워 어려운 일을 훌륭하게 해 냈다. 앞으로도 잘 해 주실 것을 믿는다.

▶박=보안법 폐지는 절대 안 된다는 게 한나라당의 변함 없는 입장이다. 우리만 할 순 없다, 저 쪽의 적화전략에 변함이 없는데…. 폐지는 안 되지만 문제 되는 부분은 고칠 수 있다는 게 변함 없는 입장이다. 여야가 계속 대치 상태이고, 경제도 가뜩이나 어려운데 대통령이 폐지방침을 발표해 국론 분열과 사회 혼란이 심해지니 정치권이 극으로만 달리지 말고 폐지가 아니라는 조건 아래 개정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반 국가단체, 정부 참칭 부분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찬반이 있어 그게 체제 수호에 지장을 주느냐 아니냐를 당내와 여야간에 논의해 보자는 것이다. 그게 체제 수호에 지장 있으면 안 되는 얘기다. 보안이라는 말이 기분 나쁘다, 그게 싫다는 얘기를 정부여당에서 많이 하는데, 기분 나쁘다고 법 이름을 바꾼다는 것이 말 안 되지만 접점을 찾기 위해서 논의해 볼 수 있다.

어디까지나 개정을 전제로 해서. 그걸 논의해 하자는 거고. 우리가 이렇게까지 마음을 열고 전향적으로 이런거 저런거 다 논의해보자고 하는데, 폐지 방침을 고수하면서 대체입법이니 형법이니 고집하면 다른 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창=덥지 않으신가. 에어컨 좀 틀까?

▶박=저는 안 더운데요. (마구 웃음)

▶박=당이 어려움 겪고 있을 때 격려 전화도 주시고 축하도 해 주셔서 큰 힘 됐다.

▶창=마땅히 해야 한다. 국보법에 대한 제 의견을 말하겠다. 저는 소위 만고불변의 법이란 없고, 필요 시 개정 또는 폐지하는 게 법인데, 국보법은 아직 폐지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항상 소위 북이 가지는 양면성 관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평화 통일을 추구하기 위해 대화 협력할 상대인 동시에 휴전선에 엄청난 병력 화력으로 대치하면서 핵을 가지고 있고 대남 적화 통일 전선전략 그대로이다. 적대 관계의 상대방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양면성 띄고 있는 게 현실이다.

평화와 화해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치 관계를 소홀히 해 안보나 국가이익, 체제에 영향 주는 일은 절대 안 된다. 국보법은 이런 대치 관계에서 체제를 지키는 법적 제도적 장치다. 폐지 주장은 대치 상황에서 방어 수단을 없애자는 것이다.

▶박=그렇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창=그렇다. 두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로 대치 상황에서 적대 관계의 상대방으로서의 북한을 대상으로 한 국보법이다. 국보법은 북한을 주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반국가단체 등에 북한을 포함시키지 않거나 또는 완화하겠다는 것은 국보법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평화를 추구하되 대치에 있어서는 방어 수단을 확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본질을 훼손하는 개념 부분은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둘째로 이런 대치 상황에서 국보법이 우리 안보나 체제 지키는 법적 장치이므로 법 폐지는 물론이고 개정에도 진보 보수가 따로 없다. 체제나 안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 핵심 가치를 지킬 수 없느냐 있느냐가 기준이지 그 해석에서 진보 보수 또는 좌우란 없다. 또 좌우간 절충이나 타협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그 동안 앉아서 언론 통해 보는데 폐지 주장하는 분들이 과거 국보법이 남용돼서 인권을 유린한 사례들이 있다고 하는데 본말을 전도한 것이다. 과거 국보법이 남용 악용돼 인권 유린 사례가 없지 않지만 국보법 자체는 인권유린이 목적 아니라 체제와 기본적 가치 보존하기 위한 법이므로 남용 악용한 사람이 나쁘지, 남용된 법 자체를 폐지하자는 것은 법의 본질을 모르는 소리다.

오신 김에 몇 말씀 더 드리겠다. 친일 문제, 수도이전 문제 등이 굉장히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 화합을 깨는 쟁점이 되고 있다. 친일 과거사 문제는 관련된 몇몇 특정인들의 문제가 아니다. 건국 정통성과 이후 국가 발전의 가치를 부정하려는 의도 하에 추진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많은 이가 제기하고 저도 그런 생각이다. 수도 이전 문제도 사실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국보법이나 과거사 문제와 아울러 뭔가 과거 역사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판갈이하는 그림 하에 진행되는 것 아닌가 많은 국민들과 제가 걱정한다.

▶박=노대통령도 목적이 지배세력 교체라 했다.

▶창=당에서 잘 대처하고 있지만 밖에서 보면 국민들은 한나라당이 좀 더 분명하게 결단력 있게 대처해서 국민을 안심시켜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朴대표가 모든 걸 걸고 막겠다는 말씀을 했다. 그 말씀을 듣고 참 뭐랄까 마음으로 좀 안됐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면서, 국가정체성 등 문제들은 그게 만일 제대로 안 됐을 때 朴대표 개인이 책임질 문제를 넘어서서 보다 큰 문제이기에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121명 전원이 안 되면 의원직 사퇴하고 국회 떠나는 결연한 의지와 각오를 국민에게 보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치에서 물러나 있는 국민 한 사람으로서 주변에서 말 하는 것 보면, 당을 참 잘 이끌어 가시는데 경제 현장에도 다녀 오시고 시장에도 다녀오신 것으로 안다. 경제가 굉장히 심각하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건 심각한 경제 문제와 더불어 대외적으로 우리나라 위상이 자존심이 마구 상한 예들이 있어 앞에 말씀한 국보법이나 과거사 문제, 수도 이전 문제 등에 있어서 분명하고 확고한 결연한 자세를 취해 주면서 경제 대외 문제는 국민의 갈망을 풀어주는 열린 자세로 협력할 건 하고 비판할 건 하면서 아무쪼록 국민 모두가 한나라당과 朴대표에 걸고 있는 기대에 따라 줄 것 믿고 잘 해주시길 바란다.

▶박=새겨 듣고 잘 하겠다. 계시면서 나라 걱정 안 하시도록 정치가 잘 돼야 하는데.

▶창=어려운 상황에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고, 그럴수록 잘 풀어 나가고 대처해서 막 쪼개지고 그러는 게 아니라 집약시키고 해서 미래를 바라보고 희망을 국민에게 줄 수 있는 정치를 반드시 해야 한다. 저희가 하지 못한 것을 짐을 지워드리면서 부탁드리는 것이다.

▶박=(생긋 웃으며)잘 알겠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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