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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경영안보 비상…현대사태 영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증시 불안과 투신 구조조정 여파로 자금시장이 경색된 가운데 터져나온 현대 쇼크로 각 기업들에 '경영 안보' 비상이 걸렸다.

대기업.중견기업 가릴 것없이 현금 흐름이 불안한 곳은 물론 탄탄한 기업들도 만의 하나에 대비해 자금확보에 당분간 경영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삐끗했다간 경영권까지 날릴 판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정부도 자금시장의 심각성을 인식, 이용근 금융감독원장이 2일 오전 시중은행장들과 조찬회동을 갖고 은행이 중견 대그룹들의 자금난 해소에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할 예정이다.

李위원장이 은행장들과 만나는 것은 지난 4.13 총선 이후 처음으로 최근 자금악화설이 나도는 H.S그룹 등에 대한 은행권의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은행권에선 "금융불안을 키워 증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은행더러 돈을 대라는 것은 동반 부실만 키울 뿐" 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하도급 결제의 현금 비중을 줄이고 생산.재고 줄이기에 나서는 한편 ▶외자유치▶투자축소▶단기부채 감축 등과 같은 비상 자금대책을 세우고 있다.

꼭 갚아야 할 대금이나 차입금은 반드시 제때 결제하는 등 미리 루머를 차단하기 위한 노력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소수의 대기업들만이 회사채 발행이나 증자 등을 통해 손쉽게 자금을 구할 수 있지,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금 구하기가 쉽지 않고, 일부 중견그룹들은 자금조달 길이 거의 완전히 막혀 있는 상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 쇼크는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지 경영자를 바꾼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 이라며' "은행이 자금 숨통을 터주지 않을 경우 일부 중견기업들이 흑자 도산할 수도 있다" 고 우려했다.

자금을 비축하기 위해 생산과 재고량을 감축키로 결정한 대기업들도 있어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의 경영에도 자금경색 불똥이 튈 전망이다.

어느 대기업 재무팀 부장 K씨는 "자금시장 불안으로 장.단기 회사채 금리차가 너무 크다" 며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장.단기 회사채 발행 규모를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 고민" 이라고 말했다.

모 대기업은 제품 판매대금으로 운영자금을 근근히 꾸려가고 있으나 금융권으로부터 신규차입을 못하는데다 차입금 상환도 늦추지 못해 투자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 신용도가 떨어져 금융권으로부터 '관찰대상 그룹' 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올초 5천억원의 투자계획을 세웠던 H그룹은 최근 투자계획을 대부분 연기, 생산시설 보수만 하기로 했고 금융권을 상대로 자금 상황설명회를 잇따라 갖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일 최근의 금융경색과 관련한 보고서를 통해 "견실한 기업들이 신규대출을 못받고 금리부담이 커지는 상황은 금융시장이 불안하기 때문" 이라며 "금융경색은 금융권에 대한 자본비율 규제보단 시장의 구조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고윤희.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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