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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로 맞추자] 물음 그것이 곧 해답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15세기 때만 해도 중국은 포르투갈과 스페인보다 훨씬 큰 2만8천명의 탐험대로 아프리카의 동쪽 연안을 탐험했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네 배에 달하는 선단으로 인도양을 탐험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중국은 신대륙을 발견해 신세계 문명을 만들어 내지 못했는가.

중국은 공업력을 좌우하는 철강생산량, 군사력을 결정짓는 화약과 대포, 지식정보를 전파하는 활자인쇄술과 제지기술 그리고 모든 과학의 기초가 되는 십진법과 0의 수학지식-그것을 서구 보다 3백년이나 먼저 갖추고 있었으면서도 어째서 산업혁명의 발상지가 못됐는가.

'지식의 지배' 의 저자 서로 교수는 그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답한다. 새 기술을 가로막는 문화와 그 조직 구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신기술을 새로운 기회가 아니라 위협으로 인식하는 문화 그리고 원양선의 건조와 항해를 칙령으로 금지했던 그런 조직과 제도들이 새 문명을 낳는 인간의 호기심과 탐험심 그리고 창조적인 욕망을 죽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새 천년을 맞고 있는 전 세계가 지금 15세기 때의 중국과 똑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는 것은 결코 기술 자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미래를 기술 자체에 맡겨버리는 낙천주의가 아니면 그것에 두려움을 갖고 과거에 주저앉는 비관주의에 처해 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새로운 기술과 변혁이 엄청난 속도와 양으로 몰아닥치고 있다.

그러한 기술과 사회변화에 화살표를 세우고 그것을 담는 조직과 제도의 새 부대를 마련하고 그래서 그것이 우리 민족만이 아니라 인류의 행복과 평화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문화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들은 전문가와 비전문가 과학 기술자와 문명 비평가, 생산자와 소비자 등 서로 다른 집단과 시스템 속에서 벌어지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현대는 막스웰의 자장 이론을 잘 모르고서도 20세기 최대의 발명가가 될 수 있었던 에디슨의 시대가 아니다. 디지털, 유전자 그리고 우주 공학과 같은 21세기를 이끌어 가는 과학 기술의 힘은 '기계기술' 이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기술' 이다.

그러므로 신기술들은 우리에게 걷잡을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비쳐지면서도 전문 지식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인상적인 비판이나 부정적인 여론 역시 그에 못지 않은 두려움과 위험성을 준다.

이 두 가지 두려움을 횡단하는 길은 기술과 윤리,가치와 행동을 새로운 21세기에 맞춰 나가는 지식의 공유에서만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공유는 어느 한쪽을 배타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어울리는 접경-빛과 어둠의 그 경계에 놓여 있는 어렴풋한 그림자속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이 불확실한 반영(半影)이야말로 21세기의 입구에 놓여 있는 스핑크스다. 그리고 그 속에 감춰진 수수께끼를 풀지 않고는 누구도 21세기의 새로운 마을로 들어갈 수가 없다.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그러한 횡단을 위해서 기획된 것이 바로 중앙일보와 새천년 준비위원회가 함께 기획한 '21세기에 맞추자' 라는 쟁점 시리즈였다. 의견과 입장이 서로 다른 사람끼리 그 동안 벌인 찬반 쟁점은 결코 흑백 논리로 해답을 구하려고 한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찬반을 통해서 서로 지닌 공통의 문제들을 찾아내고 다른 시스템속에 내재해 있는 이종 배합의 통합적인 해답을 발굴하고자 한 작업이었다.

그 결과로 비전문가와 전문가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두 공간속에 작은 대로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새로운 문화의 씨앗을 뿌릴 수가 있었다. 반년 가까이 지속되어온 그 기획물이 복안(複眼)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방법과 '반대의 일치' 라는 역설을 체감할 수 있게 했다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기획은 여기에서 끝나지만 이미 다루었던 쟁점은 물론이고 미처 다루지 못한 문제들까지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의식들은 계속해 지속돼 갈 것이기 때문이다.

해답은 바로 그 물음 속에 있다. 쟁점 자체의 논의가 벌써 새로운 변혁이며 창조다. 아주 작은 시도지만 이 기획을 통해 그것을 보여준 것이다. 21세기의 한국은 적어도 15세기의 중국과는 다르다는 것을….

그 동안 수고해주신 기고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을 통해 참여해주신 독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어령 <새천년준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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