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인하 구수한 사운드로 새앨범 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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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흔히 한국 가요사에서 '르네상스' 로 기억되는 1980년대 노래들은 기계음으로 덧칠된 요즘 댄스 음악과 달리 따스했다. 사람 냄새가 물씬났다.

권인하(41)는 그 정점에 있던 가객의 하나였다. 김현식.들국화.김광석.신촌블루스 등 포크.록.블루스 스타들과 나란히 무대에 서곤했던 그는 이 세 장르를 한 목소리로 구사할 수 있었던 드문 소리꾼이었다.

포크로 출발한 그는 김현식의 블루스와 전인권의 록을 결합시킨 독특한 보컬로 인기를 끌었다.

힘차고 뾰족한 샤우팅 창법과 물기 머금은 발라드 기법을 아우른 그의 노래에는 소년의 해맑음과 성년의 도전의식이 공존했다.

그가 5년만에 '다섯번째' 음반을 냈다. 95년 5집을 냈으니까 6집이 맞을텐데 그는 굳이 '5집' 이라 우긴다. 그러면서 이유를 들려준다.

"그때 음반을 낸지 한달만에 타이틀곡이 데이비드 포스터의 연주곡과 우연히 비슷한 것을 발견했어요. 본의는 아니었지만 표절은 표절이니까. 즉시 방송에서 사실을 밝히고 음반을 자진회수해 버렸죠. "

새 음반은 그후 5년간 절치부심하며 만든 40여곡중 13곡을 추려 낸 '노작(勞作)' 이라고 한다.

참회와 재출발의 의지를 담은 새 음반은 첫곡부터 세월의 손길이 배어난다. 힘껏 내지르던 종전의 창법 대신 절제된 목소리로 보듬듯 부르는 발라드 '사랑은' 이 그것이다. 느릿하지만 가라앉지 않고 구수하게 감겨드는 사운드가 일품이다.

다른 곡들에서도 중년을 맞은 가수의 자기회고가 주조를 이룬다. 80년대 중반 발라드 스타일인 '조건없는 사랑' , 룸바 리듬과 아라비안 기타로 과거를 추억하는 '회상' , 김현식의 절규를 연상시키는 한국형 블루스 '내 맘속에 내리는 비'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젊은 후배를 참여시켜 동시대 감각을 살리면서 묵직한 메시지까지 담아낸 곡도 있어 결코 '늙은 음반' 은 아니다.

비판적인 가사를 대중적인 사운드로 표현해내는 재주군 이적이 지은 '공유' 가 그것. "늦었지만 깨달았어/내가 지금 여기 서있는 건 여기 쓰러진 니 등을 밟고서/(중략)그래 그렇게 가기보단 그래 우리 모두의 길을 함께 걷는다면…"

이 음반에는 또다른 즐거움이 있다. 70, 80년대 라이브를 주름잡던 실력파 연주자들이 대거 참여, 멋진 반주를 들려준다는 것. '사랑과 평화' 의 기타리스트 최이철( '조건없는 사랑' ), 키보드와 팝피아노 연주의 달인 이호준( '내 맘속에 내리는 비' )등이 그들이다.

특히 들국화 출신의 전설적 기타리스트 최구희가 '공유' '날 위하고 싶다면' 두곡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선율을 선사한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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