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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올림픽 5일째] "친구 사귀려 육상 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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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금 이렇게 운동할 수 있어 무척 행복합니다."

제12회 장애인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19일(한국시간) 만난 미국 휠체어 육상선수 제이컵 하일베어(34.사진). 그는 12세 때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이다. 한국 이름은 김정호.

제이컵은 미국 시애틀에 살면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육상을 시작했다. 격렬한 운동을 하다 보면 친구를 사귀기가 더 좋다고 판단했다. 자신의 장애에 주저앉고 싶지 않았다고도 했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실력이 날로 향상됐다. "내게 이런 재주가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장애인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메달을 따지는 못했다.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 마라톤을 비롯해 1500m.5㎞.10㎞ 네 종목에 출전한다. "컨디션이 좋고 경험이 쌓여 이번에는 네 종목, 모두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표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미국으로 입양됐다.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장애인이 됐다. 82년 국내 모 복지재단의 소개로 등뼈 수술을 받기 위해 미국 하와이 병원을 찾았다가 지금의 양부모인 시니 하일베어 부부를 만났다. 복지재단이 "치료를 계속 받으려면 입양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의했고, 의료인이던 양부부도 흔쾌히 그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는 잠시 고민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쩐지 마음에 들고, 치료도 잘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제주도에 거주하던 그의 친부모도 아들이 좋은 조건에서 치료를 받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입양을 허락했다.

입양된 지 2년 뒤인 84년 양부모와 함께 제주도를 찾아 친부모를 만났다. 당시 친부모.양부모와 함께 제주도 관광을 하며 친분을 쌓기도 했다. 이후 정기적으로 한국을 방문해 친부모를 상봉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 입양된 사람치고는 우리말을 꽤 했다. 인터뷰 도중 간혹 더듬거리기는 했지만 곧잘 우리말로 대답했다.

그의 양아버지인 시니 하일베어는 2년 전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지금은 의사인 양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제이컵은 인테리어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아테네=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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