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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인공위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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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98년 개봉된 미국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Enemy of State)'. 흑인 변호사 로버트 딘이 국가안보국(NSA)의 살인극에 휘말리는 것까지는 그냥 액션물이다. 그런데 NSA가 딘을 잡으려고 위성을 동원한 장면은 색다르다. 어디를 가든 위성은 일거수 일투족을 들여다보며 딘을 옥죈다.

영화는 "위성 체계가 저렇게 발달해 있나"라는 감탄과 "조지 오웰의 '1984년'이 따로 없다"는 두려움을 함께 준다. 이런 유의 영화는 '미국 위성 불패(不敗)' 신화를 만든다. 미국 위성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그런데 과학자들은 "구름이 가리고 장애물이 널린 지상을 위성이 본다는 건 영화적 허구"라고 한다.

공군 전투발전단의 '이라크 전쟁'이란 책자에 따르면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많은 위성이 동원됐다. 3만5786km 정지 고도에서 12초마다 목표지역의 미사일을 감시하는 조기경보위성, 500km 고도에서 초당 8km 속력으로 하루 14번씩 지구를 도는 정찰위성 KH-12, 라크로스 위성 각각 3대. 해상도가 흑백 0.6m, 컬러 2.4m인 상업용 위성 퀵버드(Quick Bird) 등이다.

그러면 모든 게 훤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2003년 3월 27일 이라크 내 해병대 사령부에 비상이 걸렸다. 아바빌 미사일 기지에서 화생방복을 입고 있는 이라크군을 무인 정찰기와 위성이 찍은 것이다. 전문가는 화학 미사일이 쿠웨이트를 겨냥하고 4000명이 희생된다는 분석을 내놨다. B-52 폭격기가 떴다. 그러나 공격 3분 전 상황이 끝났다. 잘못된 정보였다. 최종적으로 다른 무인 정찰기로 '아니다'란 결론을 내린 것이다. 위성만으론 모자랐다는 얘기다.

최근 '양강도 폭발 소동'에는 '미국 위성 불패' 신화가 숨어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에 따르면 정보교류 협정에 따라 미국이 지난 14일까지 보내온 위성사진은 정부가 확보한 위성사진처럼 구름만 찍혔고 15일 처음 제대로 찍은 사진이 왔다. 몇몇 특수 위성의 사진은 누구에게도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각에선 "미국과 공조가 되지 않아 정부가 갈팡질팡했다"는 비난이 거듭 나왔다.

위성사진은 다른 정찰기구와 정보의 도움을 받아야 제대로 분석된다. 미국 위성사진도 예외가 아니다. 그 점에서 '미국 위성 불패' 신화에 너무 빠지면 갈등이 생겨난다는 게 이번 소동이 주는 교훈이 아닐까 싶다.

정치부 안성규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