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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성 살짝 피해 '감동' 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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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지난 7월 파일럿(시험제작)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SBS TV ‘미녀특공대, 체인징 유’의 한 장면. 시험 방송 후 400여명의 신청자가 몰리는 등 인기가 높아 가을 개편에서 정규 편성됐다.

'한국형'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시동이 걸렸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어떤 상황이나 사건을 사전 각본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연출 없는 드라마'라 할 수 있다. 2년 전부터 몇몇 케이블.위성 채널에서 외국 프로그램을 수입해 틀면서 시작된 리얼리티 바람은 이제 각 방송사가 자체 제작하는 쪽으로 확대되고 있다. 공통된 고민은 선정성.사생활 엿보기라는 비난을 어떻게 피해가느냐는 것.

◆ 지상파 방송서도 정규 편성=SBS는 10월 9일 시작되는 가을 개편에서 '미녀특공대, 체인징 유'를 주 1회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했다. '미녀특공대 …'는 모델 이소라, 가수 이혜영 등이 의뢰인을 사연에 맞게 변신시켜 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미국 브라보TV의 '퀴어 아이 포 더 스트레이트 가이'의 포맷을 따왔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자체 제작 물꼬를 가장 먼저 튼 방송사는 케이블.위성 여성채널인 동아TV다. 지난해 11월부터 성형수술을 거쳐 예뻐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도전 신데렐라'(사진 (左))를 방영하고 있다. 매번 도전자 경쟁률이 1000대 1이 넘을 정도로 인기다. 24일부터는 결혼을 앞둔 커플들을 모아 게임과 토론 등을 벌이고 최종 승자에게 결혼식.신혼여행 비용을 제공하는 '웨딩 서바이벌'도 방영할 계획이다.

또 다른 여성전문 채널인 온스타일은 지난 3월부터 싱글여성 4명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싱글즈 인 서울'을 11주 동안 방영했다. 싱글 남성들이 등장할 '싱글즈 인 서울 2편'도 준비 중이다. 이 외에도 코미디TV '리얼 스캔들 러브캠프', 푸드채널 '챌린지 투 쉐프'(右), 동아TV '다이어트 서바이벌' 등도 국내에서 만드는 리얼리티물이다.

이들 국내 제작물은 대부분 외국 프로그램을 본떠 만들고 있다. 미국 ABC 방송의 '익스트림 메이크오버', 미국 HBO의 '섹스 앤 시티'등이 '도전 신데렐라''싱글즈 인 서울' 등의 모델이다.

◆ 감동.정보 갖춰야 '한국형'=외국 프로그램을 본뜨긴 했지만 내용은 사뭇 차이가 난다. SBS '미녀특공대 …'를 담당하는 이충용 PD는 "불쌍한 사람이라 도와줘야 한다는 식의 명분이 없으면 시청자들의 비판이 쏟아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내 제작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필수 요소로 '감동'이 자리잡았다. '도전 신데렐라'의 경우 첫 방송이 나간 뒤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2기 방영분부터는 '재건성형'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얼굴 한쪽이 성장하지 않는 롬버그 증후군 환자와 유두가 세 개인 20대 청년 등이 출연했다. '다이어트 서바이벌'도 뚱뚱해서 임신이 안된다는 결혼 6년차 주부 등의 사연을 앞세웠다. 요리사를 꿈꾸는 청년들이 등장하는 '챌린지 투 쉐프'도 청년 실업 문제를 부각했다.

'정보'도 국내 제작물의 주요 요소다. 동아TV 이경선 PD는 "중간중간 자막을 통해 식습관.운동 등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한국형' 요소들을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정착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김창남 교수는 "방송사들이 미국.일본의 상업방송을 따라하면서 감동 등으로 포장해 윤리적 비난을 피한 뒤 점차 자극적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본색을 드러낼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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