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뉴스분석] 북 무기 실은 화물기 방콕서 억류 배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한제 무기를 실은 IL-76 수송기가 12일 태국 돈므앙 공항에 착륙했다가 억류됐다. 태국 경찰과 군인들이 무기 상자를 옮겨 싣고 있다. [방콕 로이터=연합뉴스]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후 대화 국면으로 가던 북·미 관계가 태국발 악재를 만났다. 북한제 무기를 실은 수송기가 방콕에서 억류되는 돌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태국 공안 당국의 북한 무기 압류 조치이지만 미국의 정보 제공이 결정적이었다는 점에서 북·미 간에 신경전이 불가피해졌다. 이번 조치로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대화와 대북 제재는 별개라는 메시지를 평양에 던졌다. 또 유엔 안보리 1874호의 대북 제재 이행을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체제가 견고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미국 주도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구상(PSI)이 해상뿐 아니라 항공에서도 입체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도 확인됐다. 정부 당국자는 13일 “북한은 미 정보 당국이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음을 절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 분위기 조성과 무관하게 무기 수출은 강행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안보리 1874호에 대해 거부 입장을 보여 온 만큼 이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입장인 듯하다. 하지만 유엔의 제재에 맞서는 모양새를 보임으로써 향후 국제사회에서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공을 들여온 관련국들로부터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됐다.

태국 정부는 압류 무기와 관련한 보고서를 45일 내에 유엔에 제출할 예정이다. 안보리 대북 결의 1874호의 규정에 따른 조치다. 북한은 “통상적인 무기 수출에 대한 제재는 자주권 침해”라고 강력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기 수출은 북한의 가장 큰 외화 수입원이다. 1998년 미국과의 미사일 협상 때 북한은 “연간 5억 달러의 수출 손실을 봤을 것”이라며 보상을 요구했다. 보상을 받으려고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해도 같은 해 북한의 수출액이 5억6000만 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무기 수출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대북 제재 국면에서도 북한이 무기 수출로 적어도 연간 5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번에 적발된 RPG-7 은 저공 비행하는 헬기 등을 공격할 수 있어 테러집단이 즐겨 쓰는 무기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휴대가 간편하고 파괴력이 큰 RPG-7은 AK소총과 함께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재래식 무기”라고 말했다. 대북 제재로 외화난이 심각해지자 수요가 많은 품목을 팔아 달러를 마련하려 했다는 관측이다.

이번 사태는 미국의 후속 조치와 북한의 대응에 따라 파장의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 직후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함으로써 북·미 관계가 얼어붙었던 상황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한다. 물론 북·미가 적절한 타협선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겠다는 일관된 입장을 보여 왔고, 북한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영종 기자

◆RPG-7=옛 소련이 개발한 휴대용 대전차 로켓포로 인마살상용으로도 쓰인다. 중동과 아프가니스탄 등에 확산돼 있으며 정규전은 물론 게릴라전에도 사용되고 있다. 미 육군의 스트라이커 장갑차도 RPG-7에 대비해 장갑차 겉에 보호 장치를 장착한다. 무게 7㎏, 길이 95㎝에 사거리 920m로 어깨에 견착해서 쏠 수 있다.

◆SA-7=옛 소련이 개발해 1968년에 사용하기 시작한 휴대용 대공미사일. 미사일을 결합한 무게가 15㎏에 길이가 1.44m여서 어깨 위에 얹어 놓고 쏜다. 사거리가 4㎞이며 개량형이 SA-16이다. 러시아·중국·북한 등에서 생산되며 북한은 SA-7과 SA-16을 화승총이라고 부른다.

◆일류신(IL)-76 수송기=옛 소련 일류신(Ilyushin) 설계국이 개발한 군용 수송기. 1971년 시험 운항했고 75년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다. 최대 화물 적재량은 47t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