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체험한 대구 나들이] 1."팔공산이 어디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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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내년부터 대구에 외국인들이 찾아올 일들이 줄을 잇고 있다. 2001년 국제청년회의소(JCI)아시아.태평양회의와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에 이어, 2003년 여름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열릴 전망이다.

대구는 요즘 관광산업의 새 틀을 짜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아직은 분주한 만큼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엄청난 돈을 들여 관광정보센터를 짓고, 외국 기자들을 초청해 관광설명회를 열지만 외국인들의 불편은 이만저만 아니다. 외국인이 체험한 대구 나들이의 문제점과 대안을 세차례로 나눠 짚는다.

"관광 안내책자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

3년동안 대구에서 생활한 미국인 제임스(31.외국어학원 강사)의 호소다. 그는 앞산.팔공산.우방타워랜드.수성못 등 좋다는 곳은 거의 다 가봤다. 하지만 아직도 혼자 다니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그의 고민이다.

그는 "영문으로 된 안내책자만 있으면 좀 쉬울 텐데 구할 수가 없어 한국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다닌다" 고 말했다.

지난 12일 오후 대구시 중구 동성로 관광안내소. 30대 캐나다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안내소를 찾아 동대구역으로 가는 교통편을 물었다. 관광안내원이 영문지도를 주며 "지하철을 이용하면 곧바로 갈 수 있다" 고 설명했다. 그 캐나다인은 "댕규, 댕큐" 를 연발, 지도 한장 구하려고 얼마나 목말라했는지 짐작케 했다.

많은 외국인들이 관광정보를 얻지 못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안내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대구시는 민선시장이 취임한 이래 시도 때도 없이 관광산업 육성을 외쳐왔다. 국제화를 가로막는 보수적인 지역정서를 누그러뜨리고, '굴뚝 없는 공장' 인 관광산업을 키워야 도시 경쟁력도 생긴다는 판단에서라는 설명이었다.

이에 따라 30억원을 들여 대구관광정보센터를 짓고, 관광안내지도를 새로 만드는 등 상당한 적잖은 투자도 했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여전히 정보부재로 갈팡질팡이다.

우선, 2백50만명이 사는 대구에 공공 관광안내소가 동대구역.동성로.팔공산.대구공항 등 네곳뿐이다. 눈에 띠지도 않는다.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어디가서 어떻게 물어봐야 할 지 몰라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 16일 동구의 D호텔. 외국인 투숙객이 적지 않은 호텔이지만 로비 어느 곳에도 외국어로 된 안내지도는 없다. 호텔 직원들은 자원낭비 걱정이라도 하듯 "영문판이 없는 건 아니다. 달라고 하는 외국인들에게만 준다" 고 말했다.

그나마 관광 안내지도를 손에 넣어도 별도움이 될 것같지 않았다. 대구시가 만든 '관광대구' 란 지도와 관광지 안내책자는 문화관광부에서 만든 것보다 내용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두곳에서 만든 안내책자엔 버스노선이나 요금 등 교통정보는 아예 없고, 관광호텔의 전화번호도 빠져 있다.

외국인들은 거리 이름에 익숙하지만 영어.중국어.일본어판 지도엔 가로명이 없다. 남구의 미군부대인 캠프워커를 찾는 미국인들이 많지만 영문판 지도엔 위치가 표시돼 있지 않아 관광안내소의 안내원들이 부대 위치를 설명하기 바쁘다.

지하철 동대구역 광장에 세워진 대구관광 안내판에는 지난해 바뀐 '달구벌대로' 가 여전히 '대동로.대서로' 로 표기돼 있다.

모 대학 관광과 교수는 "지도나 안내책자는 어디든지 찾을 수 있도록 쉽고 상세하게 만들어야 한다" 며 "외국인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탓에 '정보' 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관광안내를 표방하는 인터넷 홈페이지도 별로 나을게 없다.

대구시 영문판 홈페이지의 '문화와 관광' 란에는 대구시 지도와 공원.박물관,가볼 만한 곳이 정리돼 있다. 하지만 찾아갈 대중교통수단이나 묵을 호텔의 전화번호.투숙료, 옷이나 술값 등 정작 관광객들이 궁금해하는 알맹이는 없다.

홈페이지에 적혀 있는 관광지 안내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앞산공원관리사무소의 한 직원은 "직원들이 영어로 외국인을 안내할 정도가 못된다" 며 "차라리 관광안내소의 전화번호를 넣었어야 했다" 며 난감해 했다.

호텔의 정보화 마인드 부재도 심각한 수준이다. 대구시내 26개 관광호텔 가운데 세군데만 홈페이지를 개설했고, 인터넷으로 각종 예약을 할 수 있는 곳은 파크.프린스호텔 두곳뿐이다.

여기에 내국인도 헷갈리게 하는 도로표지판과 외환시세판 하나 없는 백화점.재래시장 등 열악한 관광환경이 외국인들의 고개를 내젓게 만들고 있다.

계명문화대 정찬종(鄭粲鍾.관광과)교수는 "외국인들의 대구관광이 '미로찾기' 가 돼서는 안된다" 며 " '볼거리' 이전에 관광정보를 체계적으로 전해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고 지적했다.

송의호.정기환.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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