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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 시시각각

2009년의 말’ 김태영 국방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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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아프간 전쟁은 테러라는 악으로부터 세계를 지키려는 것이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면 인접한 파키스탄이 위험해진다. 파키스탄 내 탈레반이 아프간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지원을 받아 내전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면 세계는 ‘파키스탄 전쟁’을 치러야 한다. 미국이 아프간을 공격한 2001년 이래 유엔은 9개의 결의안으로 국제사회의 아프간 참전을 지원했다. 파병국은 계속 늘어 현재 43개국이나 된다. 한국 등이 가세하면 46개국까지 될 전망이다. 아프간은 미국이 아니라 인류의 전쟁인 것이다.

탈레반의 재집권을 막는 것은 하나의 문명개조 작업이다. 많은 이슬람 국가가 그러하지만 특히 아프간에선 여성의 인권이 시련을 겪는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1965년 카불에서 태어났으며 2007년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란 소설을 썼다. 많은 아프간 여성이 야만적인 일부다처제, 이슬람의 여성 통제, 가난과 전쟁 속에서 눈물의 삶을 살고 있다. 세계의 많은 여성이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탈레반은 이슬람 원리주의에 빠져 여성을 더 괴롭힌다. 탈레반은 알카에다라는 악은 보호하고 여성이라는 선(善)은 억눌렀다.

한국의 아프간 파병은 세계에 대한 한국의 보답이다. 1950년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자 유엔 결의에 따라 16개국이 군대를 보냈다. 콜롬비아·에티오피아·필리핀·태국 같은 나라들도 수십~수백 명씩 목숨을 바쳤다. 파병 반대자들은 “왜 한국의 젊은이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나라에 가서 희생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60년 전 16개국의 젊은이가 바로 그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나라에서 꽃잎처럼 졌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다.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한 원조(援助)국이다. 지금 한국이 행동하지 않으면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한·미동맹을 생각해야 한다. 어려울 때의 친구가 진짜 친구라 했다(A friend in need, a friend indeed.). 미국은 지금 어려운 전쟁을 치르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팔짱을 끼고 “제2의 베트남전이 되면 어떡하지”라고 하는 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건 친구의 태도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건 친구와 같이 해결책을 고민하는 것이다.

위험하다고 가지 않으면 젊은 세대에 대한 모욕이다. 이라크 자이툰 부대의 모집 경쟁률은 4년간 평균 7.7대 1이었다. 아프간 동의·다산 부대도 6대 1이었다. “안전하고 수당(6개월에 1200여만원)이 많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나는 더 위험한 곳에 가도 여전히 많은 이가 지원할 거라 믿는다. 특전사부터 여군까지 모두가 그럴 것이다. 그리고 더 위험한 곳으로 가도 두려울 게 없다. 영국의 해리 왕자는 아프간 전투지역에서 근무했다. 만약 탈레반이 공격해 오면 한국군은 제대로 응징해야 한다. 탈레반이 납치했던 샘물교회 선교단 숫자만큼 복수해 주어야 한다.

“이미 동의·다산 부대가 다녀왔다”는 주장은 부끄러운 것이다. 그때 인질이 풀려난 뒤 설사 철군계획이 있었다 해도 일부러 철군하지 말았어야 했다. 인질사건으로 철군하는 것으로 비춰지면 세계가 무슨 눈으로 볼 것인가.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피랍사건으로) 아프간에서 철군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내가 꼽는 ‘2009년의 말’이다.

김진 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