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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광구 찾아도 돈 못 구해 물거품, 중소기업은 허탈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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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호 22면

사할린에서 유전 개발 사업을 하는 전대월 KCO에너지 회장은 “50곳을 시추해 한 곳에서만 성공한다 하더라도 중소기업은 탐사 광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세계적인 정유회사들도 성공률 10%, 석유공사도 5% 정도밖에 안 되는 데 너희가 어떻게 하느냐는 인식 때문에 참 힘들다”고 말했다.
 
탄탄한 현지 인맥이 경쟁력
자원 생산국 가운데는 정부의 영향력이 큰 곳이 많다. 그래서 현지 인맥을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대기업 직원은 현지에서 길어야 2~3년씩 근무하지만 중소기업은 현지에 뿌리를 박고 활동한다. 현지 네트워크 면에서 대기업에 비해 경쟁력의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점이 이것이다.카자흐스탄에서 유전을 개발하고 있는 ‘케이에스알’의 권오석 회장은 “현지 네트워크 없이는 (개발권 확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전 KCO 회장은 “입찰 준비에만 6개월이 걸린다”며 “입찰 참여 업체끼리 서로 담합해 가격을 조정하는 등 007 작전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눈물·땀으로 얼룩진 자원 개발 현장

인도네시아에서 화력발전소용 유연탄 개발에 뛰어든 ‘다솜 인도네시아’의 곽영득·영춘 형제는 “독충과 말라리아의 위험을 감수하고 내륙 오지까지 들어가서 현지인들과 끈끈한 관계를 쌓았다”며 “우리에게 투자하는 대신 직접 유연탄을 캐겠다고 나선 업체들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도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지 인맥을 바탕으로 판매 중개를 맡는 경우도 있다. 1991년 ‘카자흐스탄 진출 기업 1호’로 사업을 시작한 김정대 NTC카자흐스탄 회장이 대표적이다. 김 회장은 건설 시행 업체 등 25개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카자흐스탄 내 광구를 국내 대기업 등에 판매 중개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카자흐스탄 경제위기로 생산 광구들이 시장에 많이 나오고 있는데 한국이 놓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11억 배럴 규모 유전 지분 100%를 42억 달러에 계약했는데 3개월 실사 끝에 한국 기업이 거절했어요. 그 뒤 중국 국영기업인 CNPC가 지분 50%를 50억 달러에 샀어요. 얼마나 아깝습니까. 최근에는 우라늄 광산 2개를 4억9000만 달러에 계약하려다 무산됐는데, 러시아 기업이 4억7000만 달러에 산 다음 하나를 캐나다 회사에 팔아 큰 이윤을 남겼습니다.”

김 회장은 “지금 나오는 매물을 중국이나 일본에서 공격적으로 구매하고 있다”며 “내년 말 카자흐스탄의 경제가 안정되기 전에 한국도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파워’는 중소기업인들이 몸으로 느끼는 문제다. 곽영춘씨는 “외상으로 생산해 놓은 유연탄을 중국 업자가 일시불로 사버렸다”며 “중국 측이 광산을 척척 사들이는 걸 보면서 종종 허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한국의 대기업은 도전 정신이 없다”고 비판했다. “우리 대기업들은 단기 프로젝트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2년 내에 성과가 안 나면 대표가 옷을 벗어야 된다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위험을 감수 안 하겠다는 것이죠. 사장이 바뀔 때마다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사라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선진국 에너지 장기 펀드 부러워
해외 자원 개발에 나선 중소기업에 가장 큰 걸림돌은 자금 조달이다. 케이에스알 권 회장은 “세계적 금융위기로 카자흐스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자금 조달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자흐스탄 은행들은 자체적으로 유전 기업을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유전 사업 대출을) 보편적으로 했으나 경제가 나빠지자 까다로워졌다. 한국의 금융기관은 유전사업을 낯설어하기 때문에 돈을 빌리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해 지분 5%를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며 “선진국처럼 에너지 장기 펀드가 많다면 좋겠다”고 했다.

다솜 인도네시아는 자금 조달에 실패해 아예 개발이 중단 상태다. 곽씨 형제는 유연탄을 찾아나선 지 2년 만인 2007년 6월 인도네시아 내륙에서 발열량 7000㎉/㎏ 이상 되는 유연탄 광구를 찾았을 때만 해도 고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한국전력 납품 기준인 6080㎉/㎏를 웃도는 발열량에다 땅 위로 불쑥 석탄 노두(露頭)가 한꺼번에 셋씩이나 나온 곳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곽영춘씨는 “한국광물자원공사에서 현장을 방문했고 그해 8월 광자공 실사 보고서가 나왔으므로 곧 투자자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고 말했다. “유연탄 6만t을 채취해 배에 싣는 데까지 50억원의 비용이 듭니다. 순익이 t당 10~15달러 정도니까 한 번 납품할 때마다 수익이 6억원씩 생기는 사업을 누가 마다할까 했죠.”

하지만 그의 계산은 들어맞지 않았다.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오지에서 사업을 해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코스닥 상장 업체와도 여럿 접촉했다. 하지만 개발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계약서부터 써서 주가를 올리려고 하는 곳이 태반이었다고 했다. 곽씨는 “한 공무원이 솔직히 대기업에서 우리의 보고서를 들고 왔다면 자금 지원을 해줬을 것이라고 하더라”며 답답해했다.

KCO에너지 전 회장은 석유개발기금 등에 지원 신청을 한 적조차 없다고 한다. 그는 “소규모 민간 업자가 자원 개발 사업하는 것을 이해해 주는 이들은 많지 않다”며 “정부의 자금을 지원받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자금이 모자라면 개발이 늦어지고, 개발이 늦어지면 사업의 실체에 대한 의심도 커진다. 해외자원 개발 사업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도 문제다. 권 회장은 “우리나라에 유전이 없다 보니 허무맹랑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지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알려진 것만큼 리스크가 크지 않다”고 했다. 그는 “최근 노르웨이의 유전평가 전문기관 PGS 조사 결과 우리가 개발하려 하는 카자흐스탄 광구의 가채 자원량이 4억~4억8000만 배럴이라고 나와 한시름 놓았다”면서 “내년 중 시험생산에 들어가면 사람들의 인식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전 회장 역시 올해 세계 4대 유전·가스전 평가기관인 ‘라이더&스캇’에서 받은 광구 평가서를 보여주면서도 “유전 생산을 하기 전까지는 사기꾼일 뿐”이라고 말했다.
자원 개발 사업에 뛰어든 이들이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보인 경우가 없다는 것도 큰 부담이다. 다솜 인도네시아 곽영춘씨는 “우리 형제 이후로 현지 교민이 많이 뛰어들었지만 광구를 찾지 못했다”며 “인도네시아 유연탄은 다 사기라는 소문만 무성해져 불이익을 받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금난에 시달리고 사기꾼이라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대박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코스닥 업체들이 1~2년 개발 사업에 투자해 주가만 올리고 빠지는 경우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권 회장은 “기름을 생산하는데 성공하면 엄청난 대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 회장도 “세계적인 석유회사 쉘이 탐사에 실패한 인도 광구에서 케언에너지라는 무명의 스코틀랜드 업체가 성공해 단숨에 유명해졌다”고 말했다.

전 회장은 2005년 정치권 로비 의혹, 2008년 배임 혐의로 구속됐다가 석방된 적이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성공을 못하면 사기꾼이 되어버린다”며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유전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곽영춘씨는 “석탄이 바로 그곳에 있는데도 아무도 오지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누군가는 해야 할 텐데 우리나라에선 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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