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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학생들도 뿔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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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승호 시인의 우리나라 시문학 교육과 시험에 대한 비판(중앙일보 11월 21일자 2면, ‘내 시가 출제됐는데, 나도 모두 틀렸다’)이 화제다. 이에 대해 김중신 수원대 교수는 유감(11월 27일자 37면, ‘시인이 뿔났다고?’)을 표했다.

예술 작품의 고정화·정형화된 감상의 교육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이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고 오래전부터 회자되던 논쟁이다. 과연 오늘날 현대 교육에서 추구하는 독창성과 창의성을 무시하는 화석화된 시 감상을 강요하는 것이 우리 교육이 추구해야 할 목표일까?

현재 우리의 현실을 보자. 수능 시문학 부문에서의 출제 경향을 보면, 기존 교과서와 문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시 몇 편을 불과 4~5분 사이에 감상하고 출제자가 원하는 해답을 찾도록 하고 있다. 이미 익히 알려진 시나 작품의 경우는 감상 시간이 단축되겠지만(사실 감상이라고 할 수 없지만), 유명 작가의 생소한 작품을 단 몇 분 안에 감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시인이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심지어 10년 이상의 퇴고로 탄생한 작품도 있는데 이것을 단 몇 분 만에 감상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더구나 평론가들이 오랜 시간 다양한 자료와 연구를 통해 찾아낸 의미와 평가를 짧고 긴장된 시험이라는 상황 속에서 제대로 찾아내는 학생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교육 현장에서 국어 교사들의 가장 큰 애로는 시 교육이다. 그리고 수험생들이 수능 언어영역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영역은 ‘시가 문학’이라고 한다. 시는 감성의 언어화다. 가슴속에서의 느낌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마음으로 쓴 글을 머리로 해석하려고 한다. 느낌이 아니라 지식으로 풀어내려고 한다. 학생은 이렇게 느꼈는데 교사와 참고서는 저렇게 해석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학생 자신만의 색다른 상상의 여지를 주지 않으니 학생들은 시를 싫어하게 된다. 우리나라 중·고등 학생들에게 시란 스트레스의 대상일 뿐이다.

프랑스의 시 교육은 시를 암기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초등학교부터 시를 독립된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어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되지만, 그들의 시 교육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시 한 편을 과제로 제시해 외우게 하고,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그 시에 대해 설명해 준다고 한다. 그러고는 또 다른 시를 외워야 할 과제를 부여받는다. 이렇게 해서 학생들은 한 달에 두세 편의 시를 외우게 된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프랑스어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예술적인 자질을 키워 나간다고 한다.

시 감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 이해 능력을 위한 교육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정형화하여 시험이라는 방법을 통해 시에 대한 거부감을 주지 말자는 것이다. 예술 작품의 감상을 패스트 푸드 음식 먹이듯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영혼의 울림인 예술을 답이 있는 수학적인 사고로 해석하는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자. 시가 시인에게서 떠나면 시인의 것이 아니듯이 시 감상을 강제하지 않았으면 한다.

조동기 인천 선인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