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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자치경찰제 뿌리내리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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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광복 이후 줄곧 논의되던 자치경찰제의 도입이 현실화된다. 지역주민이 경찰의 주인이 되고 치안의 성패에 대해 정치적으로 책임을 묻는 자치경찰제 도입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한 단계 더 진척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동안 거대한 권력의 일부로 느껴지는 낯 모르는 경찰이 늘 감시하고 통제하는 듯해 기분도 좋지 않고 반발하고 싶은 측면이 있었다면 지역 내에서 선발해 늘 그 지역에 머무르며 얼굴을 아는 지역경찰이 범죄예방과 질서유지 활동을 하게 될 새 제도는 마음의 평화와 생활의 질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경찰인력이 다른 지역의 대규모 파업이나 시위현장에 동원되고 우리 지역과는 상관없는 탈주범 검거나 마약류 단속을 위한 일제 검문검색에 동원되는 바람에 치안공백이 생길 우려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주민의 여론과 표를 의식한 자치단체장이 치안확보를 위해 관심과 열의를 쏟고, 자치의회가 치안정책의 타당성과 경찰력 운용의 효율성을 치열하게 점검하고 감시하게 된다는 사실은 말로만 듣던 '지역실정에 맞는 고객중심의 맞춤치안'이 우리에게도 가능해진다는 기대를 주기에 충분하다.

공공안전과 민생보호라는 양대 가치 사이에서 늘 갈등해 왔던 국가경찰 입장에서 보자면, 자치경찰제 도입은 민생 관련 업무의 과감한 분리이양을 통해 국가적 치안목표와 사회적 범죄현상 대처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는 기대를 할 수 있다.

누구보다 자치경찰제 도입을 환영하는 것은 자치단체장들이다. 그동안 경찰.소방.교육이 빠진 '절반의 자치'로 인해 지역정부 수장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정치적 구상도 다 실현하지 못해 지역을 발전시키고 주민들의 지지를 한껏 받겠다는 꿈을 펼치지 못했던 이들로서는 이제 정말 해 볼 만하다는 기대를 가질 만하다.

하지만 자치경찰제만 도입되면 모든 것이 나아지리라는 장밋빛 희망은 금물이다. 특히 이번에 실시하는 자치경찰제는 제도변화의 완성이 아닌 '출발'로 여러 측면에서 제한적인 면이 강하다. 국가경찰조직이 그대로 유지된 채 지방자치단체에 과 단위의 경찰조직이 신설되고 경찰의 전 기능이 아닌 범죄예방과 지역적 질서유지 및 단속 등 행정경찰 기능만 부여된다. 이에 따라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사이의 역할분담이 명확하지 않고 지역별 재정자립도 차이에 따른 치안의 빈부격차 문제도 걱정된다. 지방 유력세력의 상호유착 및 이에 따른 횡포와 비리가 심화되리라는 우려도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자치경찰이 선거용 선심행정이나 경쟁자 음해를 위해 이용되고 동원되는 '사병화'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주민소환제도나 주민집단소송제도 도입 등의 제도적 보완 없이는 주민이 경찰행정을 제대로 감시하고 그 오용과 남용을 방지하기 어렵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변화와 혁신의 성패는 '제도 도입 그 자체보다는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렸다. 경찰은 기존의 거대한 몸집을 유지하려 하지 말고 구조조정을 통해 과감히 군살을 도려내 자치경찰에 이양해야 한다. 자치단체장들은 자치경찰제 도입이 '권한의 확대'만이 아닌 '책임의 가중'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가져야 할 것이다. 미국 뉴욕시도 경찰력 사용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액의 급증으로 재정파탄 위기에 몰렸던 적이 있다.

국민 역시 자치경찰제 도입을 계기로 중앙 정치 및 행정에 쏟는 관심 이상으로 지역 정치와 행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중앙방송과 언론 이상으로 지역 대중매체를 이용하며 '내 고장 일에 대해서는 늘 내 의견을 제시하고 내가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하겠다'는 참여정신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할 것이다. 정부 또한 자치경찰 발전 및 지역 간 치안불균형 해소를 위한 지원에 힘써야 할 것이다.

자치경찰제가 순조로이 뿌리 내리고 성공적으로 발전해 보다 살기 좋고 편안한 사회건설에 이바지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