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매입비 없어 풍납토성 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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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풍납토성내 유적발굴지 훼손 사태는 말뿐인 문화재 보존과 시민의식 부재가 어우러진 결과다.

적법 절차와 예산문제 등의 이유를 들고 있지만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이미 잘 알려진 풍납토성내 유적 보존문제에 대해 뒷짐만 져왔다.

그러나 발굴기일이 계속 늘어나면서 비록 물질적.정신적 피해가 커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재개발조합측이 굴착기를 동원해 발굴된 유구 일부를 훼손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풍납토성은 아직껏 확정되지 않은 한성백제시대 왕성(王城)의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지목돼 왔다. 특히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대형 건물터로 추정되는 석렬유구 등이 나타나면서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따라서 고고학계는 물론 시민단체에서도 이의 보존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이는 필연적으로 재산권 침해를 초래한다. 이를 해결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현재 문제가 된 경당지구 2천3백평의 매입비용만 수백억원대에 이른다.

풍납토성내 전체땅(43만8천평)으로 문제가 확대되어 그 비용은 수조원에 이른다. 1963년 이곳을 사적으로 지정하면서 성곽만 지정하고 내부는 버려두었던 탓이다. 당시에는 농가 몇채 뿐이었으나 그후 잠실개발 붐이 불면서 이곳은 거대한 주거.상업지구로 바뀌었다.

풍납토성 보존을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매입해 나가야 한다. 비용은 원칙적으로 서울시가 부담하도록 돼있다. 88년 담배세를 지방세로 넘기면서 당시 예산당국과 서울시측이 합의한 결과다.

그러나 서울시는 올해 들어 성곽 사유지 매입에 50억원을 배정했을 뿐 내부 부지에 대해서는 일체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 국가지정 문화재의 경우 문화재청이 비용을 분담할 수 있지만 쓸 수 있는 돈은 수십억원대에 불과하다. 관계기관이 이 문제를 서로 못본 체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 전체가 유적지인 로마는 지하철 공사를 하면서 유적이 발견되면 이를 피해갔다. 돈이 들고 불편해도 그렇게 했다. 그 배경에는 정부와 시민의 높은 문화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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