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FM '김장훈의 만화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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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도련님, 복마화령검을 받으시지요. " "아니, 진상필!" "부디 주군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제자가 되시길…. " 이어지는 칼싸움 소리. "챙그랑 챙그랑 챙~째엥" .

라디오로 읽는 만화는 어떤 맛일까? MBC­FM(91.9㎒)에서 새로 마련한 식단에는 '김장훈의 만화열전' (월~토 밤9시40분~밤10시)이 올라있다.

'공포의 외인구단' '지옥의 링' 등 만화가 영화로, '미스터 Q' '아스팔트 사나이' 등 만화가 드라마로 제작된 적은 있었다.

하지만 만화가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되기는 '만화열전' 이 처음이다.

더구나 추억 속으로 사라지던 라디오 드라마를 살리기 위해 만화가 '소생술' 로 사용된 점은 짚어 볼 만하다.

국내서도 만화가 대중문화 장르로 자리를 잡아간다는 이야기다.

'만화열전' 의 첫 테잎을 끊은 작품은 '열혈강호' (양재현 그림.전극진 글, 서울문화사). 만화잡지 '영챔프' 에 연재 중이며 단행본 판매량만 2백만부를 넘긴 대형 베스트 셀러다.

연출을 맡은 진현숙 PD는 "솔직이 이런 시도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고 털어 놓는다.

먼저 소리만으로 만화의 비주얼한 이미지를 살려내는 것이 숙제였다.

'열혈강호' 가 무협물인지라 결투 장면이 많다는 점도 걸림돌이었다.

진PD는 "비디오 게임에 익숙한 젊은 층을 겨냥하는만큼 고전적인 방식의 효과음을 피했다" 고 설명한다.

바람 소리나 칼이 부딪히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오히려 전자음을 사용했다. 또 들으면 바로 알 수 있도록 주인공의 '화룡검' 소리를 차별화하는 세심함도 보였다.

결국 소리만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라디오의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했다.

영화나 TV드라마에 비해 상상력의 여백이 넓다는 장점도 십분 활용한다.

또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과감함도 두드러진다. 정식 드라마와 달리 스토리 텔링 의존도를 낮추고 녹음 방송임에도 라이브적 특성을 가미한 것이 그렇다.

성우들의 애드립은 물론 NG까지도 모두 살린다. 썰렁하면 썰렁한대로, 웃기면 웃기는대로 간다는 전략이다.

청취자들이 "라이브 방송인 줄 알았다" 는 놀라움을 보이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또 청취자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해 성우 대신 가수 김장훈에게 진행을 맡겼다.

유희열.이승환.윤상.이소라 등과 함께 연예인들 중에서도 만화광으로 소문이 나있는 그다. 김장훈은 제의를 받자마자 "주인공을 시켜달라" 며 쾌히 승낙했다는 후문이다.

작가를 구하는 일도 어려웠다. 20편이 넘는 만화를 30여회에 맞춰 방송하려면 각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격동50년' 을 비롯한 몇몇 작품만이 라디오 드라마의 맥을 잇고 있는 실정이라 작가는 태부족. 결국 TV드라마에서 작가를 끌어올 수밖에 없었다.

첫방송이 나간 지난달 17일, PC통신에 올라온 청취자들의 메일만 70통이 넘었다.

'너무 반갑다' 는 말부터 '순풍 산부인과와 시간이 겹쳐 어떤걸 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는 반응까지 다양했다.

다음 작품은 순정만화 '호텔 아프리카' 를 준비 중이고 '힙합' 은 올 여름께 선보일 계획이다.

하지만 원작의 한계를 넘어 나름의 색깔과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런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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