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특별법 발효]"재평가· 실질보상 이뤄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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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반가운 일입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 역량이 확대되고 인간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성숙됐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결단을 높이 살만합니다. 그러나 특별법이 지닌 한계가 많고 위원회 구성에도 지켜 볼 점이 많아 앞으로도 많이 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의결됐다는 소식을 접한 강창일(배재대.한일관계사) 제주4.3연구소장은 기쁜 마음도 잠시, 다시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폭도로 매도된 제주인들의 명예를 회복해 주는 계기라는 점에서는 크게 환영할 일이지만 이들에 대한 보상은 빠져있기 때문이다.

또 억울한 죄명을 쓴 희생자들이 다시 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재심청구권도 보장해야 놓아야 하는데 이것 역시 빠져 있다.

"4.3사건은 군.경찰.우익단체에 의해 최소한 3만명 이상 민간인이 살상당한 미증유의 사건입니다.

이런 사건을 어느 정도의 명예회복만으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지요. "

강소장은 앞으로 특별법 개정 투쟁을 계속해나간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또 이와 함께 미군정 당시 일어난 일인 만큼 미국에 책임이 있으므로 미국 정부에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오는 10월에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4.3사건을 주제로한 심포지엄을 열고 국내에서도 시민 단체들과 연계해 이 사건의 정당성을 계속 알려나갈 작정이다.

강소장의 걱정은 또 있다.

명예회복 위원회는 이번 특별법의 입법 취지를 수행할 핵심적인 기구인데 위원 선정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우려한다.

위원의 상당수가 국무총리(위원장)를 비롯, 정부 관계자로 구성되는데다 민간 위원 가운데 정작 4.3연구 학자들이나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한 이들이 선정에서 배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이 사건에 관련된 일부 우익 인사들이 생존해 있거나 활동하고 있어 그들의 반발로 일이 제대로 추진될까 걱정이 앞섭니다."

제주 출신으로 4.3사건에서 친족의 피해는 없었으나 누구보다 그 아픔을 잘 알고 있는 강소장은 1989년 연구소 설립을 주도했으며 95년부터 연구소장직을 맡아오고 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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