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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문용린 교육부장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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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어버이날을 맞는 학부모의 얼굴이 그 어느 해보다 어둡다. 헌법재판소의 과외금지 위헌 결정으로 둑 터진 과외에 속수무책이다.

사교육 시장에 내몰린 자녀들도 안쓰럽지만 과외비용 걱정에 벌써부터 우울하다.

스승의 날을 앞둔 교사들도 안타깝다. 공교육의 근간이 흔들리는 소리에 천직으로 여겨온 교단이 버겁게 느껴진다.

현직 교사 과외를 엄단한다는 교육부의 물정 모르는 대책에 사기만 떨어진다. 과외 회오리의 중심에 교육부가 있다. 과외문제는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축소판이다.

실타래처럼 얽힌 과외 문제를 풀어야 할 문용린 교육부장관을 6일 오후 만났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과외금지 위헌 결정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나요.교육부가 사전에 대비하지 못한 느낌입니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文장관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로 가더니 책 한권을 들고나왔다.)

"제가 1997년부터 대통령 산하 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있으면서 과외,사교육비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자입니다. 여기에는 공교육 육성에서 입시제도 개선까지 총체적인 과외 대책이 담겨 있습니다.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은 억울합니다.

우선 헌재의 결정에 대비해 변호사까지 선임해서 준비했어요.지난해 10월엔 과외 실태조사도 벌였지요.또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수준별 교육 등 7차교육과정과 2002학년도 수능 개편 등 대입도 착오 없이 착착 진행중입니다.”

-그래도 헌재 결정 이후 뚜렷한 후속 대책이 없이 원론적인 수준의 경고성 대책만 발표되고 있는데요.

“언론이나 국민들이 (헌재 결정으로)댐이 터졌는데 뭐했느냐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댐은 이미 오래전부터 터졌다고 생각해 대비해왔습니다. 문제는 공교육의 활성화와 대학입시제도의 개편인데,2002학년도 수능등급제는 4백점 만점을 기준으로 소수 둘째자리까지 나오는 4만 등급을 9등급으로 만든 것으로 사교육 해소에 가히 혁명이다고 봅니다.”

-최소한 고액과외에 대해서는 확실한 대책을 세웠어야하는 것 아닙니까.

“고액 과외는 어려운 문제입니다.기준을 정하기가 참으로 어려워요.특정 액수 이상 안된다고 선언하면 또 말썽납니다.많다고 느끼는 학부모도 있을 것이고,적다고 느끼는 학부모도 있겠지요.어떤 말을 해도 욕먹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꿀먹은 벙어리처럼 있을 수 밖에 없었어요.사실 사전에 준비했더라도 과외라는 태풍속에서 견뎌낼 수 없었을 겁니다.현재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시·도교육청의 단속 기준 등을 참고해 고액 기준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

-과외는 단속만이 능사가 아닐 것입니다.차라리 과외교습자 신고·등록제를 통해 과세라는 방법으로 조성한 재원을 공교육으로 돌리는 방법이 낫지 않습니까.

“그게 정상적인 모습이죠.그런데 과외 강사들이 얼마를 받고,얼마를 번다고 밝히겠습니까. 과외비를 내는 학부모도 마찬가지고요. 국가가 공권력으로 어떻게 강제하기 힘듭니다. 거기에 곤혹스러운 점이 있어요.”

-대통령 업무보고때 과외 대책을 보고하지 않아 질책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허허…(물 한 모금 들이킨 뒤)슬라이드로 보고문건을 만들었지요.그런데 헌재 결정이 바로 전날이었어요. 슬라이드로 만들기는 바쁘고 해서 대통령과의 질의응답때 보고하려고 따로 문건을 준비했지요. 그런데 그만 대통령께서 먼저 얘기를 하셨지요.뭐,그렇게 된 것입니다.”

-부실한 공교육과 일렬로 세우기식 대학입시가 문제라는 소리가 높고,모든 해결책은 여기서 찾아야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공교육 내실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교실당 학생수의 개선입니다.학교 교육이 부실한 가장 큰 이유는 교실당 학생수가 많아서 교사가 일일이 학생을 돌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학생 수가 최소한 40명 이하로 내려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학교 1천1백95개를 더 지어 학급수를 30만개 이상 늘려야합니다.앞으로 4년간 예산만 11조원이 들지요.”

-정부는 교육예산을 국민총생산 대비 6%까지 늘리겠다고 공약했었는데 현재 4.3%수준입니다. 앞으로 예산 확보가 공교육 내실화에 필수적인데 대책이 있습니까.

"예산당국과 경제부처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설득해 나갈 겁니다. 나라가 1천2백만명의 아이를 교육부에 맡겼습니다.돈도 같이 줘야합니다.

흥부가 자식은 많은데 돈 못벌어오니 어떻습니까.국민총생산대비 4.3% 가지고는 어렵습니다. 교육부 예산 19조2천억원중 75%가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입니다.사업으로 쓸 수 있는 것은 4조원도 채 안됩니다."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 공교육을 내실화한다고 모든 과외가 사라지겠습니까.

"공교육을 내실화한다고 해서 학교밖의 16시간을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은 지역사회에서 놀 장소도 없고,활동도 없습니다. 그래서 태권도다,피아노다 과외를 시킵니다.거기라도 가면 아이들도 있고,싼 값에 맡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잘하는 대로,못하는 학생은 못하니까 과외를 합니다.과거 50년 동안 이렇게 과외가 흘러왔습니다.과외 행태는 우리나라의 인류학이자 사회 문화입니다.”

-공교육에도 한계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학교가 모든 교육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교육과 사교육간의 역할 분담론입니까.

"학부모나 학생이 기호에 따라 더 배우고 싶은 것은 사회교육기관이 참여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태권도·바둑은 학교에서 안 가르쳤지만 세계적인 수준 아닙니까."

-선진국의 경우 사회교육기관에서 특기·적성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는데요.

“사교육에 대해서도 학생들의 선택권을 높여주고,기관 간 경쟁을 통해 질과 가격 관리를 하면 됩니다.저소득층 학생에게 쿠폰을 줘서 이들이 기관을 선택해 배울 수 있게 하는 외국식 바우처(voucher)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우려되고,따라서 저소득층 대책이 시급합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학교에서 영어를 일주일에 두시간 배웁니다.부잣집 아이들은 영어회화다 뭐다 배우는데 돌봐주는 사람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됩니까.그래서 과외금지 위헌 결정에 따라 저소득층에는 결식아동에 밥 주듯이 교육비를 지원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고액 과외 억제를 위해서는 대입제도의 개선이 시급한데요.2002학년 입시제도 관련해 대학들은 여전히 선발 편의주의적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교육부가 전국 모든 대학의 입시를 획일화시켰습니다.이제는 수능에서 9등급제가 도입되기 때문에 대학측의 선발방법이 더욱 다양해져야 합니다.

전국 4년제 대학에게 점수만으로 뽑지말고 여러가지 기준으로 다양하게 뽑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5월엔 스승의 날이 있습니다.하지만 교사들의 마음이 편한 것 같지 않습니다. 유명교사나 TV출연교사는 과외를 할지 모른다는 감시대상에 올려놨는데 이걸 놓고 교사들은 '우리가 동네 북이냐'하는 불만도 있습니다.

“교사 1천명 중에 한명이 과외를 한다고 해서 1천명에게 ‘너희들 조심해’라는 엄포성 발언은 정말 잘못된 겁니다.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직 교사의 과외는 범죄입니다. 같은 아이를 가르치면서 특정한 아이에게 돈을 받고 성적향상을 도와준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도,법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과외 해금 때문에 교사들이 무력감,섭섭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입니다.어쩌다 선생님들이,교육계가 사회로부터 왕따 당하게 됐습니다. 특히 과외때문에 교육계가 왕따 당하는 것 같아 가슴 아픕니다.신바람 나는 교단을 만들려합니다. 그런 분위기가 일면 교육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사회가 알아줄 겁니다."

-학부모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앞으로 점수만으로 대학 입학하는 시대는 사라집니다. 무한대 점수 경쟁은 필요 없다는 말을 믿어줬으면 합니다.총점으로 일렬로 줄세워서 입학시키는 시스템이 바뀌고 있는 겁니다. 자녀 속에 감춰진 남이 가지지 못한 특기를 확실히 개발해주세요. 국가는 학생들의 기초학력 관리에 나서겠습니다."

정리=강홍준 기자

약 력

▶1947년 만주 푸순 출생

▶66년 여주농고 졸

▶71년 서울대 교육학과 졸

▶75년 공군 중위 제대

▶80년 서울대 대학원 교육심리학과 졸

▶81년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 부교수

▶85년 미국 미네소타대 교육심리 박사

▶95년 대통령 자문기구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96년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 위원

▶98년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 교수 새교육공동체 위원

▶2000년 1월 제40대 교육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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