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예배가 끝나고 작은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자신에게 어울릴 만한 옷을 챙기느라 벌어진 소동입니다. 먼저 집는 사람이 임자가 되는 그런 일이 있을 때, 아줌마들 특유의 판단력과 손놀림은 거의 본능에 가까워서 소동은 단 몇 분만에 끝이 났습니다.
이번 소동은 미진 엄마의 배려로 이루어졌습니다. 집 정리를 하던 참에, 몸매가 얇은 순영씨에게 줄 요량으로 몇 벌의 옷을 챙겼는데, 정작 순영씨가 입기엔 좀 컸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원하는 사람은 아무나 가져가라는 허락이 떨어졌는데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단 몇 분 만에 새 주인들이 정해져 버린 것입니다. 덕분에 저도 황토물을 들인 면 티셔츠 하나를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소동은 우리 교회에서 보기 드문 일이 아닙니다. 미진네처럼, 큰 도시에 나가 있는 친척들이 입지 않는다며 보내오는 옷가지가 제법 많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나눠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옷들 가운데 못 입을 정도의 헌옷은 별로 없습니다. 유명 상표의 옷을 비롯하여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옷이 대부분입니다. 좀 낡았거나 얼룩이 있는 옷들은 일복으로 제격이라 어떤 옷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나눠 입습니다.
덕분에 우리 식구도 옷을 새로 사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즈음에는 새로 살 일이 생겨도 조금 기다려 보는 여유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옷이 필요할 때가 되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들어온다는 확신까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가 입는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큰애가 다섯 살, 둘째 애가 다섯 달인데 그동안 새로 사 입힌 옷이 거의 없습니다. '떨어진 속옷도 괜찮다'는 저의 너스레에 적지 않은 이웃들이 부담 없이 헌 옷을 가져오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헌 옷이 좋습니다. 우선은 공짜로 생기는 것이니까 그 기쁨이 가장 큽니다. 그리고 그것 말고도 저의 선택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까닭은 더 있습니다. 새 옷에는 독이 묻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새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들어가게 마련인 화학물질 때문인데, 최소한 스무 번을 빨아야 그 독성이 없어진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낡고 헌 옷일수록 독성이 없는 무공해 옷이 되는 셈이니 기쁜 마음으로 입을 만합니다.
또 하나, 지구를 위해서 뿌듯한 마음으로 헌 옷을 입습니다. 지구를 오염시키는 물건 가운데 면으로 만든 티셔츠가 손꼽힌다고 들었습니다. 면화를 재배할 때 농약과 제초제를 쓰고 옷을 만들면서 갖가지 화학물질을 쓰는데, 사람들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면 티셔츠를 만들기 때문에 그만큼 지구에 필요 이상의 해를 입히는 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헌 옷 한 벌을 입는 것은 옷 한 벌을 만드는 데 드는 오염물질을 그만큼 쓰지 않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집 옷장을 열어 보면 예닐곱 해 동안 계속 입어서 목 부분이 느슨해졌거나 세탁기의 센 물살에 구멍이 난 티셔츠가 더러 있습니다. 버릴 때가 되었지만,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몸에 익숙해진 까닭에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옷이 주는 편안함은 좋은 친구를 둔 기쁨과 견줄 만합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필요 이상으로 쌓아두는 옷도 있습니다. 즐겨 입지 않아서 몇 해째 옷장에 그대로 들어 있는 옷들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옷장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지구를 위한 작은 소동이 우리 교회에서 한 번 더 일어나겠지요. 그러고 보니 둘째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 입던 임신복이 제일 먼저 눈에 걸립니다. 서너 벌 되는 그 옷들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려받았는데, 이제 깨끗하게 세탁된 모습으로 새 주인을 찾아 나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겨우 몇 벌의 옷을 사지 않고 나눠 입는 것이 지구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지만, 큰 강물도 그 시작은 작은 물방울임을 기억하며 자랑스럽게 옷장 문을 열고자 합니다.
추둘란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