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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두바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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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영국 런던의 금융가인 시티에서 유행하던 말이다. 신흥시장의 금융중심지인 이 세 지역 중 적어도 한 곳 이상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짐 싸서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뜻이다. 무섭게 떠오르는 신흥시장을 멀리서 바라봐야 하는 선진시장 금융인의 불안감을 읽을 수 있는 유머다. 이 유행어에서 앞으론 두바이가 빠질 것 같다. 설령 두바이가 위기를 잘 넘겨 국가 부도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시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문제아’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두바이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과감한 규제완화와 같은 두바이의 장점은 살리되, 과도한 차입 등은 반면교사로 삼으면 된다. 더 중요한 건 우리 사회 안 ‘두바이’와의 결별이다.

첫째, 한국 사회의 ‘돌격~앞으로’ 리더십이다. 개발독재 시기의 유물인데, 아직도 사회 곳곳에 끈질기게 남아있다. 운이 좋아 잘 풀리면 ‘강력한 리더십’으로 포장되곤 하지만 결국 미래의 성장동력을 갉아먹는 주범이다. 정부든 기업이든 이런 지도자에겐 좋은 정보만 올라간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두바이 같은 전제국가 체제에서는 조직의 보고체계를 거칠 때마다 나쁜 뉴스가 ‘당의정(糖衣錠)’처럼 한 꺼풀씩 포장된다”고 비판했다. 위기관리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것도 의사결정권자에게 올라가는 정보가 정확해야 가능한 일이다.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모하메드가 위기의 실상을 제대로 보고받았는지, 아니면 당의정만 먹어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지난주 “두바이 경제는 강하고 견고하다”고 밝힌 걸 보면 아직도 주변에 당의정이 널려 있는 것 같다.

둘째, ‘모범 따라 배우기(벤치마킹)’에 대한 과신이다. 물론 두바이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저개발국에라도 배울 게 있으면 배워야 한다. 중요한 건 ‘모범’만 따올 게 아니라 그 사회의 맥락을 함께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셰이크 모하메드의 무한한 상상력과 추진력이 부럽겠지만 전제국가인 두바이와 한국은 사회의 민주화·분권화 수준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 외국 석학에게 굳이 한국 얘기를 따로 물어보는 관행도 곱씹어볼 만하다. G20 정상회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덕분에 한국의 국격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외국의 유명한 석학 중에 한국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다. 외부 전문가의 시각으로 스스로를 객관화하려는 노력이겠지만 그것도 정도껏 했으면 한다.

셋째, 정책 당국자의 ‘강심장’이다. 시장이 불안해지자 아랍에미리트(UAE) 중앙은행이 유동성 지원을 약속했다. 그런 중요한 발표를 달랑 언론에 e-메일을 보내는 형식으로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언론에 필요한 얘기만 하면 된다는 일방통행식 소통이었다. 아마 우리 정부에 이런 강심장은 없을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잊을 만하면 ‘시비’를 걸어오는 외신에 충분히 단련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이런 강심장이 아직 남아있다면 이들도 두바이와 함께 굿바이~.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