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욕] 조기열풍 휴유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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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주부 신모(43)씨는 지난해 7월 뉴욕주 나이악의 한 사립중학교에 딸을 입학시켰다.

속칭 조기유학이다. 신씨는 딸을 돌보려고 방문비자로 미국에서 6개월을 머물렀다. 하지만 도저히 딸을 혼자 두고 귀국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머무르면 불법 체류자가 된다. 신씨는 결국 동네 개방대학(커뮤니티 칼리지)에 등록해 학생비자를 받았다.

하루 네시간씩 주 4일 수업에 한 학기 학비가 6천여달러. 딸의 등록금까지 합치면 6개월간의 학비 만도 2만달러다.

한국에서 미국과 캐나다 등지로의 조기유학 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자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늦깎이 공부' 에 나서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외국땅에 자식을 보내고 혹시 탈선할까봐 부모들이 따라 나선 '신맹모삼천(新孟母三遷)' 이다.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朴모(45)씨는 최근 신학교에 입학했다.

朴씨는 한국에선 교회 문턱도 가보지 않았다. 하지만 조기유학 온 딸을 돌보면서 장기 체류를 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朴씨는 "알아듣지도 못할 성경공부에 꾸벅꾸벅 졸다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 고백했다.

토론토의 金모(40)주부도 최근 자격증을 주는 영어교양 강좌에 등록해 학생이 됐다. 남편을 한국에 두고 자녀 두명과 함께 캐나다에 와 합법적인 신분을 얻기 위해 택한 울며 겨자먹기였다.

늦깎이 학생이 된 부모들은 제적될 경우 체류 허가가 상실 될까봐 시험 때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가 하면 커닝을 하다 적발되는 어처구니없는 사례마저 있다.

그뿐 아니다. 뉴욕 일대의 상당수 한인들은 '생활비는 듬뿍 주겠다' 며 아이들을 맡아달라는 한국 친척들의 등쌀에 골치를 앓고 있다.

하지만 교민들은 내 자식도 마음대로 안되는 게 미국인데 남의 자식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말한다.

친척 아이를 맡았다가 "왜 우리 아이가 이 모양이 됐느냐" 는 항의를 듣고 친척과 멀어진 사례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宋순호 뉴욕시 교육위원(25학군)은 "아무리 가까운 친지나 친척도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 가뜩이나 민감한 사춘기 아이들에게 정서적.인격적 도움을 주기란 정말 어렵다" 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이런 한국 부모들 얘기를 들으면 눈을 휘둥그레 뜨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런 식의 교육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면 부모의 인생은 뭐냐" 는 반응과 질문이 이어진다.

한국에서 10조원이 넘는다는 사교육비에다 이젠 영어권 국가들에 헌납하는 엄청난 외화까지 보태져야 할 판이다.

5일은 어린이날이다. 아이들을 위해 한국의 교육당국이, 그리고 부모들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신중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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