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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메이란팡과 멍샤오둥

중앙일보

입력

천 카이거(陳凱歌) 감독의 영화 梅蘭芳(戱夢情人)이 유명해지자 베이징에 있는 그의 故居에 찾아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일본이나 한국의 예술애호가들은 鼓樓에서 멀지 않은 胡同의 梅府家宴이라는 전통 레스토랑을 찾아간다. 여장배우(正旦)였던 梅蘭芳은 항상 여자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聲帶관리를 위해 특별 음식이 준비되었다. 그리고 그는 위장이 약해 항상 부드러운 음식을 좋아 하였다. 매란방은 1920년대 일본 관동대지진의 희생자를 위문공연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급성위장염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은 적도 있었다.매란방의 요리사는 그의 건강과 활동을 챙겨 주는 특별 요리를 만들어 냈다. 그 요리사의 후손이 당시의 요리를 복원하여 전통적 四合院을 개조 레스토랑을 오픈한 것이 梅府家宴이다.
찰리 차플린과 교우하고 외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중국의 경극 배우 梅蘭芳(1894-1961)은 본명이 梅瀾이었으나 여장배우의 이메지를 주기위해 蘭芳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는 경극악사였던 伯父슬하에 성장 10세때부터 무대에 올라 60년에 가까운 배우생활을 하였다. 그는 미성에다 외모가 준수하여 1920년대 이미 중국의 3대 미남에 꼽힐 정도로 많은 여성 팬을 가지고 있었다. 1919년 처음으로 일본공연을 통하여 경극의 특수한 묘미로 수많은 일본사람을 매료시켰다. 1937년 中日전쟁 발발후 베이징을 점령한 일본군 사령관은 梅蘭芳의 열열한 팬이었다. 그는 매란방의 경극 공연을 간절히 원했으나 번번히 거절 당하였다. 그 후에도 수년간 일본군의 계속되는 유혹과 위협에 항거 매란방은 아예 수염을 텁수룩하게 길러 더 이상 여장 경극배우를 할 수 없음을 얼국로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는 일본이 패망하여 물러갈 때까지 8년간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극무대에 서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천 카이거는 패왕별희(1993)라는 영화에서 張國榮을, 그리고 이번에는 黎明을 통해 매란방의 생애와 관련되는 영화를 만들었다. 이번에 소개된 영화 매란방은 그의 인기가 절정에 도달하였을 때인 1925년 남장여배우(老生)였던 孟小冬을 알게 되어 동거하면서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도 하는 보통사람으로 살고 싶어한 인간의 내면 심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천재의 방황을 아쉬워 한 많은 지인들의 권유로 5년의 동거후 孟과 결별하고 미국으로 공연여행을 떠난다. 이별의 아픔을 극복한 미국 공연은 梅蘭芳으로 하여금 세계적 배우로 거듭나게 된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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