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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 민심 달라지면 박근혜도 달라질까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좋은 수정안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충청 주민의 마음을 다독거리는 것도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한 측근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세종시 문제를 놓고 청와대와 야당, 한나라당 내 친이와 친박은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면서 충청권의 민심을 얻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앞으로 충청의 여론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세종시 원안 추진론자와 수정론자의 명암은 갈리게 된다.

청와대와 친이계는 세종시 문제에 대한 전략을 다소 변경했다. 총리실이 중심이 돼 만들고 있는 수정안에 대한 발표 시기를 이달 중순께에서 내년 1월로 미루기로 한 것이다. 세종시 계획의 수정을 관철하기 위해선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청 민심을 확실히 잡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MB “좋은 수정안만큼 충청 민심도 중요”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5일 “충청 민심이 화가 나 있는데 거기에다 아무리 좋은 안을 내놓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감정적으로 대응할 일이 아닌 정책의 문제인 만큼 (세종시 수정안 발표를) 차분하게 서두르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충청 민심을 달래는 일이 하루 이틀에 되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은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가 충돌할 걸로 보이는 상황에서 또 다른 불씨를 제공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12월에 수정안을 내놓는 걸 늦춰 달라고 청와대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청와대도 공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충청지역 주민에게 수정 추진 작업의 진정성을 알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는 점을 청와대도 인정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정치권에선 ‘원안 플러스 알파’를 주장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충청 민심이 변하면 수정 문제를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운찬 총리가 박 전 대표를 만나 설득하고 싶다고 했을 때 박 전 대표가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려면) 국민과 충청도민에게 구해야지 나한테 할 일이 아니다”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친박계의 한 의원은 “충청 도민들이 수정안을 받아들인다면야 박 전 대표가 굳이 원안을 고집할 이유가 있겠는가”라며 “당연히 충청도민의 마음이 가장 큰 변수”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대변인 역할을 해 온 이정현 의원은 “충청 민심이 변할 것을 전제로 얘기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 세종시 문제를 바라보는 충남과 충북의 시각은 엇갈리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충남 지역에선 이완구 도지사가 사퇴를 선언하자 지방의원들도 동반 사퇴 입장을 밝히는 등 수정론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충북 지역에선 자치단체장들이 수정을 찬성하는 입장을 속속 밝히고 있다. 충남북 어느 한쪽만 바라보고 충청 민심을 재단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충북의 경우 세종시가 들어설 충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만큼 민심의 온도에 차이가 나는 것이다.

충남에선 이 지사와 행동을 같이하는 인사들이 늘고 있다. 한나라당 소속 충남도의원 전원(20명)은 3일 “더 좋은 수정안은 나올 수 없다”며 도의원직 사퇴서를 도의회 당 원내대표에 제출했다. 같은날 자유선진당 소속 충남도 의원 14명도 의원직 사퇴를 결의했다.

하지만 충북에선 한나라당 소속의 남상우 청주시장에 이어 엄태영 제천시장 등이 공개적으로 세종시 계획 수정을 찬성했다. 중앙일보가 4일 대전·충남북 33개 기초단체장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충남은 16명의 자치단체장 중 15명이 원안 추진에 찬성했다. 하지만 충북지역 단체장 12명 중 6명이 원안, 3명은 수정 쪽의 손을 들어줬다. 나머지 3명은 답변을 유보했다. 정우택 충북지사의 행보도 이완구 지사와는 다르다. ‘원안 고수’가 정 지사의 입장이지만 “원안이든 수정안이든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검토하고 대비해야 한다”며 다소 탄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앙SUNDAY는 한 주간 충청 민심을 대변했던 이완구 충남지사와 남상우 청주시장을 만나 각각 인터뷰했다. 이 지사는 정부의 수정안 추진에 반발해 3일 전격적으로 지사직을 내놓았다. 남 시장은 지난달 30일 충청지역 단체장 중 처음으로 “대통령의 고뇌를 소홀히 할 수 없다”며 수정에 찬성했다.
다음은 이완구 충남지사와의 일문일답.

이완구 “정 총리, 충청과 먼저 대화했어야”
-이명박 대통령이 지사직 사퇴를 만류하지 않았나.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이 찾아와 만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관련된 얘기를 공개하는 건 적절치 않다.”

-지사직을 사퇴했지만 한나라당을 탈당하진 않았다. 총리직이나 대권을 노리는 정치적 야심 때문에 그런 행보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정치판에서 무슨 얘기를 못하겠나. 이 막중한 도지사직을 내놓는데 정치적 야심은 무슨…. 자리를 던지면 대중으로부터 관심이 멀어지고 외롭고 고단한 길로 가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 추진에 대해 사과를 했는데.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보여준 고뇌하는 모습은 국정에 참여한 도정의 책임자 입장에서 충분히 가슴에 와 닿았다. 진정성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하지만 대통령을 모시는 이들이 여러 가지 고려 요소들을 소홀히 다뤘다고 본다. 정운찬 총리가 수정을 언급했을 때부터 충남도지사와는 대화를 했어야 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총리가 충청도 사람이라면서 왜 대화를 못하나. 이 점을 충청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정 총리가 수정론을 얘기한 다음 자고 나면 정부가 말하는 세종시의 성격이 수시로 바뀌었다. 충청인과는 대화 없이 정부 맘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그게 충청에서 통할 것 같으냐.”

-사퇴한 근본적 이유는 뭔가.
“입으로 정치하기보다 몸으로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1년 전부터 세종시 계획이 무산되면 지사직을 내놓겠다고 했다. 도지사로 행정도시를 만든다며 ‘땅 팔아달라’ ‘묘지 팔아달라’ 하고 주민에게 호소하고 돌아다녔다. 그런데 원안이 무산되면 내가 무슨 논리로 주민을 설득할 수 있겠나.”

-왜 원안대로 해야 하는가.
“세종시 논란은 국가균형발전이냐, 행정의 효율성이냐의 문제에서 비롯됐다. 비효율에 대한 지적은 일리가 있다. 그건 부분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무리한 수정 추진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 건 국가적 에너지의 낭비다. 일단 원안대로 간 다음 문제점이 나오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보완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드는 비용은 지금의 소모적인 비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충남지역 정서는 어떤가.
“세종시 문제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성과 논리가 아닌 감정과 정서 문제로 변질됐다. 충청인들이 격앙돼 있다. 충청인들은 어떤 대안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본다.”

-충북지역 자치단체장들이 수정론에 찬성하고 나선 경우가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수정을 찬성하는 데는 각기 지역적 이유가 있을 거다.”
이어 남상우 청주시장과의 일문일답.

남상우 “지자체장도 정부 결정 따라줘야”
-수정 찬성 배경이 궁금하다.
“나는 내무부 관료 출신이다. 행정 부처가 분산돼 있으면 국가 운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몰매를 맞을 위험이 있어서 굳이 행정도시 반대 의견을 밝히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런데 ‘대통령과의 대화’를 보고 대통령이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나도 소신껏 말하자고 생각했다.”

-지역 주민의 반발은 없었나.
“충남 조치원에 사는 시민 한 명만 항의 전화를 했다. 격려 전화는 20~30통 받았다. 정치권에서는 ‘충청’이라고 묶어서 말하지만 충북과 충남은 정서가 많이 다르다. 충남 같았으면 (주민 항의로) 시청이 무너졌겠지. 세종시·KTX 유치 경쟁에서도 충남에 밀리고 총리·장관도 충남에서 주로 배출돼 충북은 소외감이 크다.”

-행정복합도시가 오면 청주에도 득이 되는 것 아닌가.
“청주에서 세종시까지 자동차로 10분 정도 걸린다. 녹지가 풍부하고 거주 환경이 좋은 세종시로 고소득층 주민들이 이사 가는 등 청주가 공동화될 우려가 크다. 그런데 도시 성격이 수정되면 대기업은 세종시로 가더라도 협력 업체들은 거리가 가까운 청주의 테크노폴리스 단지로 올 가능성이 크다. 수정 쪽이 청주에 득이 된다는 것이다. 설령 손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께서 정책 전환을 했으니 그에 따라야 하는 것이 시장의 의무다.”

-정당의 공천을 받아 주민들이 직접 뽑은 지자체장은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민선 지자체장도 대통령과 정부의 결정에 따라줘야 한다. 지역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면 어떻게 나라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겠나. 시장 방침에 구청이나 동주민센터에서 따르지 않으면 시정이 제대로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야당 출신 지자체장이라도 정부 정책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나는 노무현 정부 때 한나라당 후보로 시장에 당선됐지만 정부 방침에 따르려고 애썼다. 중앙과 지방의 이익이 크게 충돌할 때는 목소리를 낼 수도 있겠지만 협력이 기본이다.”

-이완구 충남지사의 사퇴를 어떻게 보나.
“충북과 충남의 입장이 좀 다르다. 충남지역 문제는 언급하지 않겠다. 이 지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일단 정부의 방침을 수용하면서 개선점을 찾아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국민과의 신뢰 문제도 고려해야 하지 않나.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라면 정책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실효성과 효용성이 없거나 환경이 변하면 수정할 수 있다. 세종시와 서울을 오가며 정책 사안을 결정한다는 것은 시간과 비용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이다.”

신용호·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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