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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칼럼] 호남 싹쓸이 정의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총선후 싹쓸이 지역감정에 대한 분석 중 영.호남출신 두 학자의 글을 실은 동아일보 기획이 돋보였다.

3.15항쟁과 부마(釜馬)민주항쟁의 성지였던 고향에 애착을 지닌 영남출신 한인섭 교수는 '반DJ라면 무조건 찍어주나' 에서 영남의 붕당적 패거리 의식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광주출신임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기며 80년 5월의 참극을 실존적 충격으로 안고 있는 한신대 윤평중 교수는 '호남의 한이 싹쓸이 명분 되나' 로 호남의 투표성향을 지역감정 위에 기생하는 또다른 패권주의적 책략이라고 분석했다.

영남출신 교수는 영남의 반DJ현상을 '권력상실에 따른 금단현상' 이라고 봤고 호남출신 교수는 '저항적 지역주의가 패권적 지역주의보다 도덕적.정서적으로 반드시 우월한 것이 아니다' 는 결론을 내고 있다.

호남의 한, 억압과 배제의 아픈 기억들이 호남의 인사편중과 정책왜곡을 정당화해 줄 수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윤교수는 영남인이 그렇게 싫어하는 DJ의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부산 지역주민 35.7%가 표를 던졌고 울산 창원의 민주노동당 후보가 40% 가까운 득표를 보인 반면, 호남의 한나라당 후보는 3%대 득표를 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호남인들은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질타했다.

나는 이 두편의 글이 영호남간 지역감정의 배경과 실체를 가장 잘 분석했고 이런 식의 자기 반성적 성찰과 비판이 우리의 잘못된 지역주의를 청산하는 용감한 작업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불쑥, 정말 불쑥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호남 싹쓸이 정의론' 이 터져나왔다. 김성재(金聖在)청와대정책기획수석비서관이 주간조선(5월 4일자)인터뷰에서 "소수의 단결은 정의지만 다수의 단결은 불의다" 라는 발언을 했다.

"호남의 단결과 영남의 단결을 같은 맥락에서 보고 양쪽에서 싹쓸이 한다고 양비론으로 보고 있는데 그것은 참 잘못된 것입니다.

마이너리티(소수)의 단결은 정의지만 머조리티(다수)의 단결은 불의이기 때문입니다. 5.16 군사정권 이후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40년 가까이 지배해 온 집단에 의해 차별당하고 억압당해 왔던 마이너리티가 단결해 지역 싹쓸이 하는 것을 지배집단의 단결과 똑같이 본다면 이거야말로 역사인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봅니다. "

그는 부연해서 흑인과 백인의 단결, 노동자와 백인의 단결, 여성과 남성의 단결은 다른 것이라고 했다. 차별 당하고 권리를 빼앗긴 전자의 단결과 차별하고 지배한 후자의 단결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이런 역사적 측면에서 볼 때 마이너리티의 단결은 '정의적' 이고 머조리티의 단결은 '불의적' 이라는 것이다.

金수석은 오랫동안 재야 민주화운동을 했고 불우한 장애인에 힘과 용기를 북돋우는 활동을 하면서 살림공동체를 통해 나눔의 생활을 실천하는 맑고 독실한 종교인으로 나는 알고 있다.

그의 발언에 다른 배경이 있을 수 없고 고위 공직자의 계획된 의도가 숨겨졌다고는 보지 않는다. 또 '차별당하고 권리를 빼앗긴 집단이 정의롭다' 는 그의 주장에 일면의 진실성이 있음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金수석이나 민주화운동을 해온 여러 단체의 사람들이 광주민주화운동과 광주의 한을 광주만의 것으로, 호남인의 것으로만 축소하려는 저항적 지역주의를 이젠 더 이상 부추겨서는 안된다고 본다.

앞의 윤평중 교수가 지적했듯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나 영남의 패권주의는 이제 둘 다 청산해야 할 역사적 잔재이지 이를 정의와 불의로 편 갈라 또다른 지역주의에 불씨를 댕길 어떤 명분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정부 안에서 일하고 있는 여러 민주인사들의 민주화 독점의식과 도덕적 독선주의가 이런 형태로 불거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감마저 든다.

나는 이 난을 통해 거듭해서 지역감정의 두축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군사 쿠데타의 지팡이에 의지해 권력을 향유해 온 영남의 패권주의나 광주의 한을 전국화하지 못하고 광주만의, 호남만의 한으로 응집시키는 저항적 지역주의의 뿌리를 제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지역감정의 포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와서 영남의 패권주의는 불의로 매도하고 호남의 저항주의는 정의로 미화한다면 앞으로의 지역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치유하고 해소할 것인가.

운동가나 종교인이기 전에 책임 있는 공직자라면 잘못된 발언은 서슴없이 고치고 사과하는 게 또다른 지역감정의 분출을 막는 바른 처신일 것이다.

권영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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