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K-리그] 슥슥 칼 간 지 15년, 전북 마침내 우승컵 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전북 최강희 감독(앞줄 오른쪽) 과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전북의 홈인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는 추운 날씨 속에서도 역대 최다인 3만6000여 관중이 들어와 전북의 첫 우승을 지켜봤다. [전주=뉴시스]

녹색 꽃가루가 전주월드컵경기장에 흩날렸다. 전북 현대는 창단 15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호남 연고 축구팀이 1983년 프로축구 출범 이후 처음 정상에 올랐다. 다른 팀에서 쫓겨나듯 전북으로 온 선수들은 감격에 겨워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전주월드컵경기장은 한풀이 무대였다.

전북이 6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챔피언십 2009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성남 일화를 3-1로 꺾었다. 1·2차전 합계 1승1무로 전북의 우승.

◆김상식 “날 내친 걸 후회하게 해 주겠다”=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전북의 주장 김상식(33)은 가장 먼저 벤치로 달려가 팀 관계자들과 얼싸안았다. 이동국(30)도 함께였다.

김상식과 이동국은 지난해 말 성남에서 쫓겨났다. 김상식은 억울했다. 99년 프로에 들어온 뒤 8년간(광주 상무 2년 제외) 뛰었던 팀이었다. 몸에 (성남의 팀 컬러인) 노란 피가 흐른다고 자부하던 그였다. “체력이 떨어졌다”는 말을 납득할 수 없었다. 아쉬움은 이동국도 덜하지 않았다. 2008년 여름 잉글랜드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그는 성남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팀은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돌아갔다.

90년대 말 국가대표 시절부터 단짝이었던 둘은 올해 초 함께 전북으로 이적했다. 이동국의 부활을 확신한 최강희 감독이 삼고초려 끝에 이동국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김상식은 다른 팀이 더 끌렸다. 하지만 최 감독의 ‘사주’를 받은 이동국의 전화 한 통에 김상식은 전북행을 결심했다. 둘의 합류로 우승을 향한 전북의 밑그림은 완성됐다. 이동국은 올 시즌 정규리그 20골로 득점왕이 됐다. 주장 완장을 찬 김상식은 각 팀에서 흘러 들어온 선수들의 중심을 잡았다.

◆이동국 “아픈 과거보다 미래 생각”=시즌 초 “나를 내친 성남을 후회하도록 만들겠다”던 김상식의 다짐은 현실이 됐다. 경기 전 신태용 성남 감독은 “우승을 해본 선수들이 우리가 많다”면서도 김상식을 경계했다. 김상식은 성남에서 K-리그 우승을 4번이나 경험했다. 2000년대 들어 현역 최다 기록이다.

신 감독의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전북 최강희 감독은 “김상식이 워낙 리더 역할을 잘해 잔소리를 할 게 없었다”고 칭찬했다. 결국 성남은 그동안 쌓아온 우승 노하우를 전북으로 넘겨준 셈이 됐다. 경기 전 김상식은 마음속의 칼을 수십 번 갈았다. 룸메이트인 후배 임상협이 “지면 은퇴할 각오를 하세요”라고 한 말이 기분 좋게 들렸다. 본인 생각도 그랬다. 김상식은 이날 옐로카드와 맞바꾼 몸싸움을 불사하며 동료들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그는 “성남 때보다 우승의 기쁨이 더하다.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다. 성남은 내가 없어 2등에 머물렀다. 칼을 너무 가느라 잠을 못 잘 정도였다”고 기뻐했다. 이동국은 “아픈 과거보다 미래를 생각하겠다”며 감정을 절제했다.

전반 21분과 39분 두 골을 터뜨린 에닝요가 전북의 창단 첫 우승에 앞장섰다. 이동국은 후반 27분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경기 MVP는 에닝요에게 돌아갔다.

믿음의 리더십으로 ‘재활 공장장’이라 불리는 최강희 감독은 이동국·김상식·최태욱 등 ‘왕년의 스타’들을 확실하게 재기시키며 감독 데뷔 5시즌 만에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전주=장치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