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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식 감독 장편 데뷔작 '아나키스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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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어떠한 권위도 부정한다. 정치조직이나 정치권력은 더욱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인위적인 장치를 거부하기 위해 테러도 불사한다. 그러면서 개인의 자유는 최대한 옹호한다.

아나키즘, 즉 무정부주의는 1920년대 조국을 잃고 중국을 떠돌던 조선인 망명객이나 혁명가들에게는 상당한 매력을 지녔다.

아나키스트의 삶에는 낭만적인 요소도 있어 영화소재로 더없이 훌륭하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으로 단편 '나르시스트' '고철을 위하여' 등으로 이름을 얻은 유영식감독(33)의 장편 데뷔작.

아나키스트라면 1919년 만주에서 결성돼 본거지 없이 각지를 떠돌며 일본관헌과 관청을 암살.파괴했던 의열단의 김원봉.이성우 등이 유명하다.

그들의 불같은 삶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역사인물을 모델로 삼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다소 떨어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액션이 많은 남성 영화다.

배경은 1924년 국제도시 상하이. 모스크바 대학 출신인 세르게이(장동건), 톨스토이를 숭배하는 휴머니스트 이근(정준호), 냉철한 사상가 한명곤(김상중), 과격한 행동주의자 돌석(이범수), 막내 테러리스트 상구(김인권). 이들은 일제와 맞서 온몸으로 싸우다 한을 품고 이국땅에서 사라져간다.

여기에 조선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미모의 클럽 가수 가네코(예지원)를 등장시켜 아나키스트들의 절박한 사랑을 그렸다.

아나키스트 5명을 각각 출신배경이 다른 인물로 설정해 일제 치하에 신음하는 나라를 구하겠다는 당시 우리 민족의 간절한 소망을 읽게 한다.

그러나 백정의 아들로 코믹 성향이 지나친 돌석의 캐릭터는 아무래도 독립운동가를 희화화하는 듯해 어색하다.

한국 영화사상 최초의 한.중 합작영화로 3개월 동안 1백% 중국에서 촬영했다.

중국측 합작사인 상하이 필름은 의상.미술.소품.엑스트라 등을 맡았다.

베이징, 창춘과 함께 중국의 3대 스튜디오로 꼽히는 상하이 필름 스튜디오의 처둔(車墩)오픈세트는 20년대 상하이 거리 풍경을 잘 살려냈다.

29일 개봉.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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