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황제의 빗나간 사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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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호 16면

박빙의 승부를 펼칠 때마다 신경이 끊어질 것 같은 긴장감은 골퍼의 숙명이다. 골프 클럽을 메고 1년 내내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고충도 무시할 수 없다. 어딜 가나 세인의 주목을 받아야 하는 고단함까지 겹치면 스트레스는 극에 달할 것이란 건 쉽게 짐작이 간다. 더구나 가는 곳마다 사인 공세에 시달리고, 누구나 자기 얼굴을 알아본다면 그 압박감이 어느 정도일지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적어도 물고기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스쿠버 다이빙을 즐긴다”는 그의 말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88>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34). 예상치 못했던 스캔들이 터져나오면서 만신창이가 된 상태다. 뉴욕 나이트클럽 호스티스와의 염문설에 이어 그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또 다른 여인까지 등장하면서 그는 코너에 몰렸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당장 반박할 줄 알았는데 우즈는 “일탈행위를 후회한다”고 밝혀 사실상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말았다.

부와 명예,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가진 우즈였지만 항상 행복했을 리 없다. 외롭고 힘들 때마다 유혹의 손길이 ‘골프 황제’를 내버려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스캔들을 처음 접하곤 헛소문이려니 생각했다. 타이거 우즈가 아름다운 아내를 놔두고 다른 여자를 만나다니-. 옐로 저널리즘의 횡포려니 했다. 그만큼 우즈는 성실함의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우즈는 전 세계 골프팬들의 우상이자 자라나는 새싹들의 롤 모델 아니던가. 인종차별을 딛고 골프 클럽 하나로 최고의 스포츠 스타 반열에 오른 스토리는 ‘영웅’으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그는 살아있는 신화이자 전설이었고, 희망이자 꿈이었다.

그런데 골프 황제의 이런 이미지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그가 일탈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마지못해 시인하면서 골프 황제는 골프팬들의 가슴에 크나큰 실망을 안기고 말았다.

골프 황제는 진실이 알려지는 게 두려웠던 모양이다. “공인도 사생활이 있다”고 주장하며 ‘프라이버시’의 방패 뒤로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프라이버시라고 주장하면 알리고 싶지 않은 허물쯤은 가려질 줄 알았던 모양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당당했던 골프 황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나도 인간이며 완벽하지 않다”는 변명은 구차하게 들렸다. 여론의 칼끝이 목을 겨누자 뒤늦게 부적절한 행각을 시인하는 건 우리가 바라던 골프 황제의 모습이 아니었다.

타이거 우즈는 올해 17개 골프대회에 출전해 1050만8163달러를 벌어들였다. 120억원가량 되는 큰 돈이다. 그가 벌어들인 상금은 골프팬들의 사랑과 신뢰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전 세계 골프팬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가 골프 황제의 사생활을 시시콜콜하게 들여다 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골프팬들은 골프 황제의 도덕성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골프는 신사의 스포츠가 아니던가. 팬들은 그가 이번 사건으로 슬럼프에 빠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먼저 진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게 먼저라고 본다. 그래도 골프팬들의 실망을 치유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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