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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호접몽 ‘내가 아바타인가, 아바타가 나인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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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호 20면

#‘아바타’가 지금과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된 계기는 1992년 닐 스티븐슨이 공상과학(SF)소설 『스노우 크래쉬』를 출간하면서다. 이 소설에서는 가상의 나라 ‘메타버스’에 들어가기 위해 누구나 ‘아바타’라는 가상의 신체를 빌려야 한다. 아바타는 산스크리트어 ‘avataara’에서 유래했다. 분신·화신이라는 의미다. 소설 속 주인공은 현실에서는 보잘것없는 피자 배달부였지만 메타버스에서는 최고의 검객으로 명성을 날린다. 이 개념은 2003년 등장한 3차원(3D) 가상세계 사이트 ‘세컨드라이프’로 실현됐다. 세컨드라이프 이용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3D 아바타를 선택해 제2의 삶을 살 수 있다. 세컨드라이프의 캐치프레이즈는 ‘YOUR WORLD, YOUR IMAGINATION’. 세컨드라이프를 만든 린든랩 최고경영자(CEO) 필립 로즈데일은 “소설 『스노우 크래쉬』를 읽고 내가 꿈꾸는 것을 실제로 만들 수 있다”는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17일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신작 3D 영화 ‘아바타’가 국내에서 개봉한다. 이 영화는 지구 밖에서 에너지 자원을 구하려는 인류가 행성 ‘판도라’에 아바타를 내려보내는 얘기다. 인간의 의식과 판도라 원주민의 몸을 결합시켜 원격 조종이 가능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인간이 갈 수 없는 장소에 대신 보낸다는 얘기다.

가상세계로의 초대

#90년대 초 처음 월드와이드웹(WWW)이 등장했을 때 이곳은 무엇이 존재할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였다. 국내에서는 PC 통신 천리안이 95년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고, 다음 해 최초의 상업용 검색엔진인 ‘심마니’가 나왔다. 웹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다양한 서비스가 개발되고, 2000년 이후에는 단순한 정보 검색을 넘어 사람들의 교류가 이뤄지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각광받았다. 국내 대표적인 커뮤니티 사이트 싸이월드는 자신만의 특별함을 뽐낼 수 있는 인터넷 공간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정보의 공유는 폭넓게 이뤄졌다. 상업적인 성공도 거뒀다. 아바타를 꾸미기 위한 각종 상품(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는 가상의 화폐인 도토리가 엄청난 매출을 기록한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93년 130개였던 웹사이트 수는 3년 만에 60만 개로 늘어났다. 이베이나 아마존 등 웹 기반 전자상거래도 활발해졌다. 세계 최대 검색 서비스 업체 구글은 산업 지형도까지 바꾸고 있다. 검색 광고를 통한 맞춤형 마케팅이 일상화됐다. 2000년 중반부터 등장한 유튜브·마이스페이스 등은 네트워크의 새로운 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2009년 현재 인터넷은 전 세계인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텍스트에 기반한 2차원(2D) 웹을 넘어 3D 웹이 곧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월드와이드웹이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아직은 가능성의 세계인 3D 웹, 즉 3차원 가상세계가 또 하나의 현실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소설의 배경에 불과했던 메타버스(가상세계)가 불과 10여 년 후 현실로 등장한 것처럼 말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100여 개의 가상세계가 운영되고 있으며 속속 새로운 사이트가 출현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투자도 본격화됐다. 가장 활발한 곳은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세컨드라이프를 필두로 어린이용 가상세계인 ‘클럽펭귄’ ‘웹킨즈닷컴’ 등이 인기를 얻고 있다. 월트디즈니가 7억 달러에 인수한 클럽펭귄은 미국 초등학생들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일부 학교에서는 방과후 클럽펭귄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하고 있을 정도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는 각자의 3D 위치 검색 서비스인 ‘구글 어스’와 ‘버추얼 어스’에 엔터테인먼트·게임·전자상거래 정보 등을 결합해 전 지구적인 가상세계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3차원 가상세계인 ‘밋트미’는 도쿄 23개구를 현실과 동일하게 구성해 집을 짓거나 쇼핑할 수 있도록 구현했다. 중국은 아예 정부가 나서 ‘중국판 세컨드라이프’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통해 1만 명의 고용 창출과 연간 10억 달러의 수익 창출을 기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업을 맡은 ‘베이징 사이버 레크리에이션가구개발(CRD)’이 미국·대만·호주 등을 돌며 설명회를 열어 세계적 기업들의 유치를 시도하기도 했다.

가상세계는 지금 막 꽃을 피우려는 단계다. 막대한 신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의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수많은 시도가 이뤄지는 가운데 실패와 성공이 교차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온라인게임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가상세계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된 논의가 이제 겨우 시작된 상태다.

나의 분신으로 현실에서 못다한 꿈을 실현할 3D 아바타의 활약을 한국에서도 기대할 수 있을까. 장자가 ‘호접몽’ 편에서 “지금의 나는 정말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라고 했던 것처럼 “현실의 나는 정말 나인가, 가상세계의 아바타가 나인가”를 고민하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날이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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