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자작 포르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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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로마제국의 제3대 황제였던 칼리굴라는 명문가 출신으로 즉위 초기에는 한동안 덕망을 보이기도 했지만 중풍으로 쓰러졌다가 깨어난 뒤에는 이따금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는 등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음란증세는 극에 달했다. 귀족의 결혼 피로연에 참석했다가 신부(新婦)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녀를 약탈해 자신의 아내로 삼는가 하면, 귀부인들을 연회에 초청해 한사람씩 닥치는대로 겁탈하기도 했다.

귀족의 신부였던 첫 아내가 그 귀족을 계속 만난다는 이유로 쫓아낸 칼리굴라는 카에소니아란 미녀를 두번째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는 특히 몸매가 곱기로 유명했던 카에소니아의 알몸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즐겼다.

귀족부부를 초청해 놓고 알몸으로 한바퀴 돌게 하는가 하면 때로는 그들 앞에서 자신의 성행위 장면을 노골적으로 묘사해 여자손님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칼리굴라가 보였던 그런 증세는 오늘날의 성의학에서 말하는 노출증의 일종이다. 영어로는 '피핑 톰' 이라고 하는 관음증(觀淫症)과 함께 성도착(性倒錯)증세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이런 증세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직접적인 성관계에 대해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대신 자신의 성기나 벗은 몸을 남에게 보여주는 행위, 남의 성행위 장면이나 벗은 몸을 바라보는 행위에서 극도의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심리학적 측면에서는 이런 사람일수록 성애(性愛)는 물론 순수한 이성애(異性愛)조차 갖기가 어려운 것으로 간주된다.

인간의 본성이 마멸돼가는 탓인지 이런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얼마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이른바 'O양' 의 비디오 사건만 해도 그렇다.

여자는 자신들의 성행위 장면을 비디오에 담아보자는 남자의 제의에 선뜻 수락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비디오가 마치 날개라도 달린 듯 세상에 널리 유포되기에 이른 것이다.

성이 '유희(遊戱)' 처럼 돼가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만약 둘사이에 진정한 '사랑' 이 있었던들 이런 일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최근 검찰에 적발된 인터넷을 통한 저질 음란 동영상 유포사건도 더 이상 확대되기 전에 해결돼 그나마 다행이지만 어떤 젊은 유부남이 결혼전 다른 여자와의 성관계 장면을 담아두었던 비디오가 사건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니 놀랍기만 하다.

성문제와 관련한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것들을 새삼 언급하는 일조차 부질없는 것이 돼버렸지만 '성의 본질은 순수하다' 거나 '사랑이 없는 성은 무의미하다' 는 의식이 되돌아오지 않는 한 이런 일들은 끊임없이 되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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