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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환경] 4.생태계복원 인간이 주도해야 하나-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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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최근 고성.강릉.삼척.울진 등지에서 발생한 산불피해는 정부가 긴급재난지역으로 선포할 만큼 피해면적도 방대하지만 그 정도도 심각하다.

식물의 고사는 물론 작은 동물에 양서류.파충류.토양미생물까지 거의 멸종 수준에 이르렀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지역을 방치하면 귀화식물을 비롯해 척박한 지역에만 자라는 가시 많고, 독성 강한 식물이 자라나 산불 발생 이전의 생태계 구조로 돌아간다는 보장이 없다.

매년 9월에 서울 남산, 창덕궁 후원 등에 가보면 메밀꽃과 같이 생긴 흰꽃이 피는 서양등골나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미국이 원산지인 이 풀은 1960년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귀화식물이다.

남산은 74년부터 산책로를 따라 철재 울타리를 설치하고 철저히 출입을 막았던 곳이다.

하지만 80년대초 이태원쪽 숲에 몇 포기였던 서양등골나물이 20년 만에 남산 풀들 가운데 주인공이 되었다.

2~3년 전만 해도 황소개구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토종 민물고기.개구리.곤충 심지어 뱀까지 먹어치워 민물생태계의 먹이사슬 구조가 붕괴될 위험성이 있자 퇴치작전을 벌인다며 야단법석을 떤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황소개구리 울음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자 관심이 사라져 버렸다.

왜 사라졌을까□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일까□ 아니다.

우리가 물에 방생한 외국 원산의 붉은귀거북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이 동물은 육식성으로 물 속에 사는 모든 동물을 먹어치우는데, 특히 올챙이를 먹어치워 더 이상 황소개구리가 크게 불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황소개구리에서 붉은귀거북으로 동물종이 바뀌었을 뿐 역시 귀화종이 우리 민물생태계 토종동물의 씨를 말리고 있다.

우리는 최근 고속성장시대를 겪으면서 자연생태계를 거침없이 파괴하고 각종 오염물질로 생태계를 피폐화하거나 실수로 산불을 내 산림생태계를 며칠 사이에 초토화했다.

이렇게 불모지화한 생태계를 되살리는 데 자연 스스로의 복원능력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옛날에는 척박한 땅에라도 풀들이 들어와 끈질기게 자라나면서 땅의 기운을 차츰 되살리고 자생식물이 서서히 자라나 먹이사슬의 기초를 복원했다.

수백, 수천년이 걸렸지만 기다리기만 하면 원래의 생태계가 되살아날 수 있었다.

그런데 현대는 상황이 다르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지구가 하나의 마을이 되어 귀화생물의 이동이 우리가 원치 않아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따라서 한 지역 생태계가 불모지가 되면 자연생태계가 복원되도록 놓아두지 않고 귀화식물이 일시에 몰려와 자리를 잡는다.

귀화식물은 다른 지방의 나쁜 환경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강한 독성물질을 갖고 있고 이런 독성물질에 그 지역 토종동물이 적응하지 못해 먹이사슬이 형성되기 힘들다.

그러므로 현재와 같이 파괴된 생태계는 인간이 원인제공자이므로 우리 인간이 적극적으로 생태계 복원에 나서야 한다.

생태계 복원은 가능한 한 파괴되기 이전의 생태계 구조를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 잘 살기 위해 또는 실수로 파괴한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논리이다.

이경재(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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