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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무분별 서해안 개발 피해는 주민 몫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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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비만 오면 토석채취장에서 흘러내린 흙과 돌로 저수지가 메워져 농사짓는 데 이만저만 애를 먹는 게 아닙니다. 올들어 저수지에서 퍼낸 흙만 트럭 1천대분이나 됩니다. "

충남 당진군 정미면 수당리 정재훈(53)이장은 1989년 마을 위쪽 봉화산(해발 2백m)이 서해안 석문 간척사업에 쓰일 흙과 돌을 캐는 토취장(土取場)으로 지정되면서부터 4백여 마을주민의 고통이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처음엔 토취장에서 돌가루와 흙먼지가 날아와 고추.배추농사를 망쳐 놓더니 96년부터는 해마다 비만 내리면 흙과 돌이 흘러내려 논밭을 뒤덮고 2백여m 떨어진 마을 위쪽 수당저수지를 메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3년 동안 농사를 망친 주민 이희목(52)씨는 "얼마전 군청에서 나와 저수지 공사를 했지만 토취장은 복구하지 않은 채 내버려둬 올해도 똑같은 피해가 우려된다" 고 걱정했다.

서해안 간척사업용 토사 채취를 위해 주변 산들이 파헤쳐진 뒤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이 때문에 서해안 일대의 자연환경.생태계 파괴는 물론 저수지 매몰로 주민들이 농사를 망치고 여름철이면 가옥침수 피해가 잇따르는가 하면 마구잡이 개발로 국립공원과 문화재까지 훼손당하고 있다.

농업기반공사.수자원공사와 보령시, 옹진.당진.진도군 등 9개 지방자치단체가 시화.새만금 등 서해안에 20개 간척사업을 벌이면서 토사 채취용으로 마련한 토취장은 모두 1백50곳.

중앙일보 취재팀의 현장확인 결과 이 가운데 1백46곳이 파헤쳐진 뒤 충남 당진군 수당토취장.전남 해남군 증의토취장 등 1백여곳 약 2백70여만평(서울 여의도의 3배 면적)이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도 안산시 황금산(해발 1백68m)의 경우 반쪽이 잘려나갔고, 전남 완도군 대신산(해발 2백m)은 산허리 아랫부분이 돌려 깎여 정상부분만 산 모습을 하고 있다.

국립공원인 전북 부안군 변산의 해창석산(해발 2백여m)은 새만금 간척사업을 위해 전체의 80%가 깎여나간 채 환경부와 농림부간에 복구방법을 둘러싼 줄다리기로 2년째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이로 인해 해마다 전남북과 충남.경기도의 토취장 주변 논밭들이 흘러내린 흙.돌로 피해를 보고 있다.

특히 경기도 안산시.화성군 일대 25개 토취장 주변에서는 방풍역할을 하던 산이 깎이면서 5년 전부터 날아오는 염분 때문에 이 지역 주산품인 포도나무가 말라죽고 꽃수정이 제대로 안돼 포도수확량이 줄어들고 있다.

환경단체인 녹색연합 김태호 간사는 "이같은 결과는 행정편의주의와 개발조급증이 빚어낸 것으로 원상복구가 불가능해 개발이익에 못지않은 폐해가 우려된다" 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고현곤.김현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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