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교육감 선거 '그들만의 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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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 교육계 인사가 학교운영위원회와 관련해 우려섞인 전화를 해왔다. "학운위가 설립 취지와 다르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는 것이다. "학운위에 공무원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교육감 선거와 관련돼 벌써부터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느낌" 이라고 했다.

학기 초부터 교육감 선거와 관련, 교육계 일각에서 학운위의 인적 구성에 관권(官權)의혹을 제기하고 각 교육단체의 제사람 심기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서울시교육청은 "문제가 없다" 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초.중등교육법상 자격요건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학운위의 정착을 위해 교육부가 1996년 공문을 통해 직원들의 참여를 권했다" 는 설명만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교육감 선거와 학운위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는 지적에 묵묵부답이다.

교육감 선거의 문제는 또 있다. 현행으론 교육감 선거가 피감독자의 감독기관장(長) 선출이라는 기이한 형태가 된다.

교육청의 감독을 받는 교장.교사(교원위원)는 물론이고 교육청의 공무원마저 학운위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위원에도 교육청 직원들과 전교조 등 교육단체에서 상당수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쯤 되면 학운위는 그저 교육청 직원이 자신의 기관장을, 피감독자들이 감독기관의 책임자를 선출하는 '그들만의 잔치' 판에 불과하다.

이에 따른 파행은 불보듯 뻔하다. 교육계가 누구누구 파벌로 나뉘는 것은 물론 교육감이 소신있는 행정을 펼치기 어렵다.

서울의 경우 아직 명시적으로 출마의사를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현 유인종(劉仁鍾)교육감의 재출마는 거의 확실한 것으로 주위에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잔소리도 하고 감독도 해야 할 교육감이 자신의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일선 교장과 교사에게 올바른 감독권을 행사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 劉교육감의 부쩍 잦아진 교육현장 순시도 입후보자의 선거유세쯤으로 해석하는 관계자도 있다.

"대학이 총장직선제를 시행하면서 인기위주의 정책만 남발, 교수들 인건비만 올리고 학문발전은 도외시하는 폐단이 보통 교육을 담당하는 각 시.도교육청에까지 확대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는 한 교수의 말이 기우(杞憂)이기를 바란다.

윤창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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