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경제다] 2. 수급불균형 해소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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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증시침체는 미국증시 폭락이라는 외우(外憂)와 국내증시 수급 불균형이라는 내환(內患)이 겹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미국증시 폭락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국내증시의 수급 불균형은 투자신탁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이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장안정에 나서야 할 투신이 팔자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투신이 제기능을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대우사태 이후 수익증권 환매가 러시를 이루는 바람에 환매자금 마련을 위해 보유주식이나 채권을 계속 내다팔 수밖에 없었던 데 있다.

대우사태를 계기로 투신상품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다는 얘기다.

투신 조기 구조조정론이 총선 이후 금융가의 최대 이슈가 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대로 가다간 투신업계 전체가 환매사태에 휩쓸려 무더기 도산하는 사태로 악화되지 않겠느냐는 위기론까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공적자금을 추가로 조성해서라도 과감하게 투신부실을 털어내 신뢰를 회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방형 뮤추얼펀드도 앞당겨 도입해야한다는 조기 구조조정론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한국.대한투신은 몰라도 주인이 있는 투신(운용)사에 공적자금을 넣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대한투신의 경우 공적자금을 투입, 고객 돈이 들어있는 신탁계정은 부실을 털어내 깨끗한 투신 운용사로 거듭나게 하고 회사돈인 고유계정은 판매증권사로 분리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한다는 복안이다.

나머지 투신(운용)은 주인인 재벌 계열사들이 증자를 통해 부실을 털어내라고 압박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하지만 업계는 이같은 정부 방침에 불만이 많다.

투신 부실의 주요 원인이 1989년 12.12조치로 상징되는 증시부양책과 대우사태에 있었던 만큼 업계에 책임을 모두 미룰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투신(운용)사들이 대우 부실채권의 정리를 미루며 정부눈치만 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투신(운용)사가 부실을 털어내지 않는 한 개방형 뮤추얼펀드의 도입도 어렵다.

투신이 고객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개방형 뮤추얼펀드를 섣불리 허용해줄 경우 투신 돈이 급격히 뮤추얼펀드로 옮겨가 투신 연쇄부도 사태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정부와 업계가 손실을 분담, 투신 부실을 빨리 털어내고 고객의 신뢰를 얻는 방법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편으론 투신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대투신증권 이명규 전무는 "현재 수익증권의 경우 환매수수료가 면제되는 기간이 일률적으로 3개월, 6개월로 돼 있어 이것이 만기로 잘못 알려져 있다" 며 "환매수수료율을 없애든지 기간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해 환매가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도록 분산하는 게 필요하다" 고 말했다.

펀드매니저가 바뀔 때마다 일단 기존 펀드종목을 팔고 보는 관행도 시정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 펀드성과를 평가하는 객관적인 잣대를 업계 공동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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