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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 텃밭 충청권서도 참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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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충청권 정치지도에 대변화가 일어났다.

15대 총선 때 28석 중 24석을 휩쓴 자민련이 이번엔 24석 가운데 50%남짓 얻는데 그쳤다. 그 뿐 아니다. 자민련은 15대 당시 10석을 확보했던 대구.경북에서 한석도 건지지 못했고, 7석이었던 수도권.강원에선 오직 이한동(李漢東)총재의 연천-포천만 살아났다. 비례대표를 합쳐도 교섭단체(20석)구성조차 불투명한 '반쪽 지역당' 신세가 된 것이다.

자민련의 몰락은 JP의 위기로 이어질 전망이다.

JP는 40년 정치인생에서 여러번의 고비를 넘겼다. 1988년(13대 총선) 그가 만든 신민주공화당은 예상외로 35석이나 획득함으로써 정치권을 놀라게 했다.

노태우(盧泰愚).YS(김영삼 전 대통령)와 손잡고 만든 민자당 시절의 92년 선거(15대)에선 공화계 출신이 본인을 포함, 4명만이 당선돼 JP는 크게 상처입었다. 결국 YS로부터 팽(烹)당한 뒤 자민련을 창당해 치른 96년의 15대 총선에서 많은 사람은 "JP의 몰락" 을 예견하기도 했다.

고비를 맞을 때마다 그동안 JP를 살려낸 힘은 선거 때 나타났던 충청도 유권자의 결집과 JP자신의 노련한 정치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JP의 나이는 이제 만 74세다. 무엇보다 충청권 민심이 JP를 떠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는 게 타격이다. JP가 선거일 사나흘 전부터 "자민련이 군소정당으로 떨어지면 충청도 이익은 누가 대변하겠느냐" 는 애타는 지역감정 호소가 이번엔 먹히지 않았다.

그를 둘러싼 정치환경도 어느 때보다 악화됐다. 정치판이 3당 혹은 4당구도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완연한 2강구도로 재편됨으로써 양당은 더 이상 그의 정치적 공조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됐다는 것이다.

80년대 후반 이후 JP의 정치인생을 특징지웠던 '제3세력으로서의 캐스팅보트' 는 더 이상 파괴력을 지니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3년 안에 반드시 내각제가 이뤄질 것" 이라는 그의 소신과 철학은 설득력이 반감됐다. 고립무원처럼 보인다. 당내에서도 벌써 선거 인책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핵심 당직자는 "JP의 충청도 민심에 대한 과신이 '아무나 공천해도 괜찮다' 는 식으로 나타났다" 고 안타까워했다. 이와 함께 "중부정권 창출론으로 수도권에서 최소한 10석은 얻을 것" 이라고 큰소리쳤던 이한동 총재마저 힘을 잃어버려 "자민련을 누가 떠받칠 것인가" 하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20석 안팎의 자민련에서 누구 하나라도 탈당할 경우 '무소속 클럽' 으로 전락할 가능성은 언제라도 상존한다. 정계은퇴 압박설이 나오는 가운데 재기를 노리는 JP의 다음 수가 주목된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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